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26일 "지금 우리 외교·국방·통일 정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대미(對美), 대중(對中), 대북(對北), 대일(對日) 정책은 개별 대응을 하고 있어 우리 스스로 모순과 갈등이 생기고 있다"며 "정책의 일관성과 조화를 위한 '외교 안보 종합 설계도'부터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북핵 6자회담 수석 대표로 '9·19 공동성명'을 이끌어냈던 송 전 장관은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새 정권이 들어서는 5년마다 정책이 바뀌는 현재 상태로는 북핵(北核) 같은 난제를 맞아 주변 모든 나라에 부탁만 해야 하는 을(乙) 신세를 면치 못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골치 아픈 북한을 머리 위에 두고, 세계에서 가장 센 나라, 가장 큰 나라, 가장 잘사는 나라의 갈등을 조화시키며 우리 국익을 지키려면 사활적 인식을 해야 한다"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유엔 안보리가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이빨'이 있는 제재를 하려면 중국과 북한의 교역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중국은 매는 들되 때리지는 않을 것이고, 미국도 중국과 뼈와 뼈가 부딪치는 마찰은 피하려고 할 것이다. 겉보기엔 최대한 강력하게 보이는 수사(修辭)로 포장되겠지만, 한계가 있다. 중국은 결국 협상을 통한 해결로 가는 수단으로 안보리 결의를 사용할 것이다."

―중국의 대북 정책이 과거와 다르다는 의견도 많다.

"최근 5~6년 사이에 중국이 변하고 있다는 얘기를 국내외 여러 사람이 한다. 하지만 바뀐 것은 중국의 화장(化粧)이지 본질이 아니다. 중국은 북한이 좋아서가 아니라 지정학적 구조 때문에 북한을 포기하지 못한다. 북한이 무너지면 중국 혼자 감당해야 하는 구조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은 2010년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6·25전쟁의 중국식 명칭)은 정의로운 전쟁이었다'고 했다. 이게 중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선언이다."

―결국은 다시 대화 국면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보나.

"제재가 북한을 불편하게는 하지만 숨통을 끊을 수는 없다. 그리고 결국 북핵 해결이라는 최종 목표를 위해서는 대화·협상을 재개할 수밖에 없다. 우려되는 것은 이런 국면이 왔을 때 우리가 설 땅이 어정쩡해지는 것이다. 한국은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등의 카드를 전부 쓰며 너무 빨리, 너무 멀리 나와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에 결정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면 얼마든지 닫을 수 있다. 하지만 개성공단 현찰 때문에 북한이 생존 수단인 핵을 포기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우리가 초강대국 미·중을 이끌고 갈 수는 없다. 북핵 문제에서 미·중 간 조화를 촉진하는 것이 우리 역할이다. 미국은 북한을 불신하고, 북한은 미국을 불안하게 여긴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센티브(혜택) 카드', 중국의 '디스인센티브(혜택 박탈) 카드', 북한의 '핵 카드'를 하나씩 연결하고 끼워 맞추는 역할을 해야 한다."

―결국 북한이 핵 포기 의사가 없었던 것이 문제 아닌가.

"북한이 애초부터 핵 포기 의사가 전혀 없었다면 그동안 한·미·중 등 여러 나라가 허상을 좇은 것인데, 그렇게 보지 않는다. 북한은 재래 무기가 떨어지니 보완한다는 '안보 차원', 부족한 전력(電力) 확충을 위한 '경제 차원', 독재자의 위상을 올리기 위한 '국내 정치 차원'에서 핵을 개발했다. 이 동기가 다른 방식으로 채워진다면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의 군사 안보 지향점은 무엇이 돼야 하나.

"전시작전통제권부터 빨리 전환해야 한다. 전작권을 예정대로 2012년에 가져왔으면 북한이 훨씬 겁냈을 것이다. 북한은 우리가 군단 단위를 넘는 작전을 독자적으로 못 한다는 것을 안다. 전작권 전환 연기를 주장하다 이제 핵무장이나 선제공격 등 대북 강경 발언을 하는 '안락의자의 전사(戰士)'가 너무 많다. 전작권을 가져오면 우리가 작전 계획을 짜며 뭐가 필요한지를 알 수 있고, 거기에 맞게 주도적으로 전력 계획을 세울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바다에서 사건이 생기면 잠수함 사러 가고, 육지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미사일 사러 가는 일만 하고 있지 않나."

―최근 국내의 독자적 핵무장 주장은 어떻게 보나.

"주변국이 한국이 진짜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 '카드'가 될 수 있는데, 우리가 핵 개발을 못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다. 한국은 온갖 음식이 차려진 밥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텅 빈 밥상을 가진 북한처럼 상을 엎고 막 나갈 수 없다. 국내의 핵무장론은 분노와 감정의 표시이지,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장기적인 통일 구상은 어떻게 해야 하나.

"현실적 방법은 한반도에서 남 과 북이 공존하고 미·중이 충돌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간과 방법은 정해놓지 않고 통일의 문을 열어놓다가 기회를 만들어 통일을 이뤄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답답하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외교 안보 문제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감성적 명료성'이다. 당장 속이 시원하진 않더라도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