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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관옮김

1. 도리를 논하다

2. 사회를 논하다

3. 치국을 논하다

나는 <매천야록>과 <열하일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이익(1681~1763)의 <성호사설>을 접한 것은 처음이다. 정약용이 미관시절 동지들을 모아 이익의 저작을 가지고 스터디그룹을 형성했다는 말은 들었었다. 바로 그 성호사설이다.

말 그대로 옛글은 흘러간 시대의 쓸데없는 글이어야 하고, 무책임한 독서의 대상이어야 마땅하다. 그저 듣기 좋은 옛날이야기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의 글은 200여년이 지난 현세에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성호의 가계도를 보면 고조부 이우인이 일곱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상홍, 상의, 상관, 상신 등이 삼사에 올랐고 , 그중 상의는 증조부이다. 성호의 아버지 하진은 1680년 허목과 윤휴를 두둔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진주목사로 좌천된다. 남인이 정계에서 축출되는 경신대출척이 일어나 부친이 파직되고 운산으로 유배되었다가 그곳에서 숨진다. 성호는 그곳에서 태어났다. 성호는 중형 이잠에게서 글을 배우고 벼슬을 하고자 하였으나 녹명에 문제가 있어 과거를 포기한다. 1706년 이잠은 성균관진사의 신분으로 남인을 축출하고 노론을 불러들인 갑술옥사의 조정자 김천택을 죽일 것을 요청하였다가 모진 고문 끝에 노론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로써 성호는 관직의 길을 단념한다. 이침의 아들 이용휴의 아들로서 그의 집안이 눈에 띄는 벼슬을 한 이는 이가환이다.

성호의 학문분야는 문학, 성리학, 예학, 경학, 경세학, 자연과학 등 깊은 연찬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학문은 안정복, 권철신 등 제자들에게 이어졌고, 정약용에 이르러 집대성되었다.

독서를 하다가 잠시 머물렀다 사라질 생각들을 메모로 남겨 세월이 흐르자 거대한 사유의 산맥이 되었다. 그가 서학에 관계된 서적을 접한 것은 부친이 진향정사로 북경에 파견되어 귀국하면서 수 천 권의 책을 사오면서이다.

성호사설은 모두 3007편의 글로 되어 있다. 천지문.만물문.인사문.경사문.시문문으로 이루어졌고 제재와 주제에 따라 분류한 것이다. 이를 다시 안정복이 추려서 1332편의 <성호사설유선>으로 편집했다. 이것은 조선시대 지식인의 학문적 상상력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권력에서 배제되었을 때 권세가에 빌붙어 다시 벼슬을 바랄 것인가?

그는 권력과 떨어져서 사대부들의 권력투쟁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거룩한 명분으로 치장한 그 싸움이 결국 권력욕의 산물에 지나지 않음을 명료하게 인식한다. 당쟁과 과거와 사대부체제의 타락은 곧 통치의 대상인 백성들의 삶이 말할 수 없이 피폐해짐을 의미했다. 역자는 성호를 실학자 아닌 유학자로 보았다. 그래야만 그를 풍부하게 읽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의정 상진은 “어찌 차마 살아 있는 짐승을 앞에 두고서 잡아먹을 생각을 할 수 있겠는가?”하였다. 이는 듣고서 마땅히 조심하고 반성해야 할 말이다. 닭이나 개는 미물이지만 , 그것들을 보며 좋으니 나쁘니 고기 맛을 평하고, 삶아야 한다. 구워야 한다는 등의 비교하는 말을 듣고 있자면 절로 이맛살이 찌푸려진다. 힘이 닿는 것이라면 모두 죽여서 먹을 것을 생각하는 것은, 이른바 금수의 약육강식의 도이다. 그의 식생활을 보면 청빈하고 어쩌면 채식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마트에 가보면 어릴 적부터 먹어왔던 식재료는 상대적으로 적고, 수천 수백 킬로미터를 건너온 것들이다. 채소와 과일 외에 사람들이 선호하는 대부분의 식품은 살아있는 동물의 육신이거나 그들의 시신이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 그리고 지역사회를 위해 먹을 것을 생산하던 농업은 시장에서 판매할 상품으로서의 식품을 생산하는 산업이 된지 오래다. 석유와 전기가 없으면 존립이 불가능한 산업이 된 것이다. 음식산업은 보다 많은 이윤을 내기위해 보다 많이 먹고 버릴 것을 권유하고 있다. 아토피는 항시 듣는 명사가 되었고, 암도 감기처럼 흔하다. 한편에서는 ‘비만탈출’, ‘에스라인’, ‘몸짱’을 위한 병원과 피트니스센터가 성업 중이다.

역자는 성호의 한편으로 개결한 삶의 자세는 물론 본받아야 할 것이지만 , 그런 자세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고 보고 있다.

대관들이 문벌만 보고 재능과 도덕성은 살피지 않으니, 이런 법은 빨리 없애버려야 된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서얼차별문제를 사대부체제의 위선을 보여 준다. 서얼문제는 기본적으로 양반-남성의 성욕문제에서 출발한다고 쓰고 있다.

조선이란 나라가 허약한 것도 노비 때문이고 , 백성이 가난한 것도 노비 때문이라고 적고 있다. 노비가 된 사람이 무슨 흥이 나서 농사를 열심히 짓겠는가. 노비가 사회와 나라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설 일이 무어 있겠는가? 노비가 우글거리는 사회는 저주받은 사회이고 발전 가능성이 없는 사회다. 그러나 성호는 여성에 관한 한 성리학의 교리를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대해 우리는 흔히 현재의 잣대로 과거를 재단하지 말라고 한다. 과연 무엇이 옳을 것인가?

백성이 가난한 것은 잘못된 제도에 있다. 백성이 먹고 난 뒤 남은 것을 임금에게 바칠 뿐이라고 말한다. 백성이 굶주리는데 위에서 강제로 취해간다면 그것은 약탈이다. 같은 노동을 하고도 남보다 훨씬 적은 급료를 받는 이들이 도처에 널려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을 비정상적이라고 하지만 아니다. 대한민국의 자본주의는 이 상황을 ‘정상’이라고 전제하기에 작동한다. 사람을 오직 이윤을 낳는 도구로 보고 경쟁과 생산성이란 어휘아래 노동력만 있는 대로 빨아낸 다음 가차 없이 뱉어버리는 것을 포학한 정사로 보고 있다.

농업이 주요한 산업이었던 그 시기에 준조세처럼 거두었던 것들이 시간이 지나며 당연한 세금처럼 굳어진다. 모든 것은 백성들이 만들어내고 양반들은 소비만 한다. 나는 학교에서 조선의 역사를 배우면서 간과했던 사실이 너무 많음을 알게 된다. 그렇지만 서얼의 폐단과 노비제도의 부당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외면적으로 성리학을 지배이데올로기로 내세우는 조선의 모순이었다.

성호는 罷冗官에서 “우리나라는 본디 땅은 좁고 관리는 많다고 알려져 있다. 땅이 좁으면 재물이 넉넉하게 나지 않고, 관리가 많으면 토색질이 풍조를 이룬다. 백성은 더욱 빈곤해지기 마련이다. 300곳이 조금 넘는 고을로 이 한없이 많은 사람들의 탐욕을 채우기란 실로 어렵다.” 라고 말한다.

왕과 왕비가 상복을 3녕을, 1년을, 9개월을 입을지를 두고 관료들끼리 목숨을 걸고 치고받았지만 그 자체가 무엇이 중요한가? 그 역시 권력을 독점하기 위한 더러운 싸움일 뿐이었다.

조정일각의 백성을 위한 선량한 언어는 그대로 실행되지 못했으며 그대로 실행되었다면 유민과 도적이 나타날 리 없었고 ‘황구첨정’이나 ‘백골징포’같은 어휘도 사라졌을 것이다.

밭을 갈지도 , 베를 짜지도 않는 양반의 사치스런 삶은 어떻게 가능한가. 정조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다. 그것을 밭을 가는 사람과 베를 짜는 사람의 생산물을 빼앗기 때문에 가능하다. 양반은 백방으로 재화가 흘러나오는 구멍을 뚫는다. 수령자리가 바로 그런 구멍이다. 이것이 조선 양반의 우아한, 아니 사치스런 삶이 가능했던 원리다.

대동법을 만든 뜻은 대동미 외에 다른 것을 더 받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바치는 공물은 예전 그대로다. 세월이 흐르며 공물의 종류가 더 불어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나라 땅은 작은데 고을은 많고 , 일은 간단한데 관리는 많다. 이것들을 모두 줄여야 할 것이다.

그는 조선의 상황에 대해“대들보가 흔들리고 있건만 바로잡지 않고 임시방편으로 나무를 괴어 받치고, 비가 새면 지붕을 새로 덮을 생각은 하지 않고 물 받는 사발을 가져다 놓는 지경”이라고 말한다. “반계수록에 실린 ‘여러 가지 좋은 의론’을 단 한 가지도 시험한 것이 없었다” 라고 말한다. 율곡과 반계만 그렇겠는가? 성호도, 박제가도, 박지원도, 정약용도, 그리고 우리가 아는 모든 실학자들의 아이디어는 실천된 적이 없었다.

성호는 백성을 부유하게 하려면 첫째, 농사에 힘쓰게 하는 것, 둘째, 검소한 삶을 가치있게 여기도록 하는 것, 셋째, 토색질을 금지하는 것이다. 라고 말한다.

화폐에 대해 부정적이어서 화폐는 곧 부정한 부의 축적을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본다. 과잉소비는 결국 돈으로 인해 일어난 것이기에 돈은 백가지가 해롭고, 한가지의 이로움도 없다.

성호는 경화세족의 사치품의 수입을 막아서 국부(은)의 유출을 방지하자고 주장했다. 북경에서 수입되는 서화, 골동품, 자명종 등의 주 소비층역시 이들이었다. 무역에 목을 매는 한국 사람들은 성호의 말을 무시하겠지만 수입품으로 가득 찬 백화점과 마트, 시장을 보면 저것들이 과연 우리에게 , 인간의 삶에 그렇게 절실한 것인가는 생각해 볼 일이다.

고려는 강력한 국가가 아니었다. 요나라를 멸망시킨 금나라, 금, 송을 쓸어버린 원나라가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다. 요, 금, 송, 원나라는 차례로 사라졌다. 고려가 거대제국의 틈바구니에서 국가를 유지하면서 생존했다는 사실이다. 슬픈 일이지만 고려는 몽고가 강성할 때에 그들에게 추포를 주고 사신을 박례하다가 침략을 당한다. 최씨 무인정권은 고종을 협박해 강화도로 들어간다. 유승조는 이에 반대한다.“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이 올바른 도리다. 예를 갖추어 섬기고 신의로 사귀면 저들이 무슨 명분으로 우리를 곤란하게 할 것인가?” 라고 주장했다. 성호는 고려는 속국이 되기는 했지만 국호를 보존하고 잔혹한 대우를 덜 받은 것은 외교, 곧 사대의 공으로 돌린다. 오늘날 우리의 주변을 살펴보게 한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가 원군을 보낸 것은 역관 홍순언이 당시 부모의 장례비가 없어 자신의 몸을 팔던 여자를 조건 없이 구해주고 그 여자는 후일 조선에 명군 파견을 주장하는 석성의 총희가 되었다고 한다.(<李長白傳>) 성호는 壬辰再造에서 임란의 최대의 공로자로 석성, 이순신, 이여송, 심유경순으로 꼽고 있다. 이여송과 심유경을 배후에서 움직인 것 또한 석성이라고 한다. 정유재란 중 일본에 사신으로 간 심유경은 히데요시를 만날 때마다 환약 하나를 먹었다고 한다. 히데요시가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무슨 약이기에 만날 때마다 먹는가?”

“이약을 먹으면 늘 기운이 통하고 몸이 가볍습니다.”

그러자 히데요시도 나도 한 알 줄 수 있는가하여 만날 때마다 한 알씩 주었다고 한다. 히데요시가 이때부터 사지가 빼짝 꼬챙이처럼 말라갔다. 심은 사신관에 돌아와 해독약을 먹었음은 물론이다. 석성의 총희로부터 홍은 스스로 짠 ‘보은단’을 받았다 하여 그의 동네이름이 보은단골-고운담골-미장동-미동이 된다. 지금의 소공동 롯데호텔 자리라고 한다.

성호는 귀화한 일본인을 차별하지 말고 똑같은 백성으로 대우해야 저들도 진정한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국말을 하면서 한국에서 일하고 한국에서 살면 한국인이다. 재일교포의 차별에 대해 그토록 분노하던 한국인이 어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야박한가. 국가란 인간이 태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둘러쓰는 형식에 지나지 않는다. 그저 새로 들어온 식구로 생각하면 될 것이 아닌가.

다큐멘타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