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3 로마 막시 미술관 예산 1억3800만 파운드(약 2600억원), 20~21세기 미술 및 건축에 초점. 이탈리아 현대미술 작가를 지원하려는 목적과 글로벌 문화교류에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 아니슈 카포, 윌리엄 켄트리지 작품으로 개관전을 꾸몄다. ⓒ 엘렌 비넷, ⓒ 이완 반, ⓒ 로날드 할비

2003년부터 2008년까지 5년간 세계 미술계는 엄청난 호황을 누렸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갤러리가 등장하며 미술시장이 형성된 이래 최대 규모였다. 특히 중국 현대미술이 국제 미술시장에서 7%나 되는 점유율(2009년 ‘Art Price’ 분석)을 기록한 것은, ‘미술’이라는 예술의 한 장르가 어떻게 ‘신자본’(new capital·사회학자 사스키아 사센이 『글로벌 시티』에서 정의)이 되는지를 한눈에 보여준 사례였다. 이 같은 국제 미술시장의 급격한 발전과 변화로 인해 미술계의 헤게모니는 미술관을 중심으로 한 비평적 관점의 해석이나 미술사 중심에서 미술 시장으로 넘어갔다. 각종 매거진이 전하는 ‘미술계 영향력 인물 순위’에서 미술관 디렉터는 뒤로 밀리고 작가나 컬렉터, 딜러가 부상하고 있는 것을 보라.

4 퐁피두 메츠 미술관 예산 6100만 파운드(약 1200억원), 총 예산 유럽연합(EU) 지원, 유럽의 문화특구 개념, 프랑스 지방자치제 정책의 일환으로 진행. 프랑스 국립근대미술관 컬렉션 5만9000여 점을 소개할 예정. ⓒ 로날드 할비

하지만 2008년 10월 미국 금융위기 이후 미술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거의 세금으로 운영되던 유럽의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재정이 축소되고 기업 후원금이 줄어들자 전시 규모를 축소하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새로운 움직임은 있다. 미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려는 대형 현대 미술관들이 잇따라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첫 십 년을 맞아 시장 호황기에 추진됐던 계획들의 ‘결실’이자 미술계의 ‘사건’으로 불리는 대형 프로젝트들이다.

1977년 프랑스 파리에 리처드 로저스와 렌조 피아노가 공동으로 건축한 퐁피두 센터가 그 분관(Pompidou-Metz)을 독일과의 국경지역인 메츠에 지난 5월 13일 개관했다. 또 5월 27일에는 서양 미술의 근원지라 말할 수 있는 이탈리아 로마에 처음으로 현대미술관 막시(MAXXI)가 문을 열었다. 런던의 테이트 모던 신관 증축 공사는 2012년 런던 올림픽에 맞춰 개관한다는 목표 아래 착착 진행되고 있다.

5 테이트 모던 증축 신관 2억1500만 파운드(약 4300억원) 예상, 정부가 5000만 파운드, 런던개발에이전시가 700만 파운드를 마련했고, 1300만 파운드가 기부되었다. 특별히 교육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어린이 갤러리나 더 많은 연구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 헤이즈 데이브슨와 헤르초크 & 드 뫼롱

수천억원대의 예산이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는 것은 21세기에 들어와 더욱 커지고 있는 문화 창조산업, 스포츠 관광 등 서비스 산업의 중요성을 각국 정부가 간파했다는 뜻이다. “연간 관람객 수를 200만 명 정도로 예상했지만 지난 10년간 500만 명이 훌쩍 넘으면서 테이트 모던의 확장이 불가피해졌다”는 니컬러스 세로타(Nicholas Serota) 테이트 뮤지엄 관장의 말은 이를 뒷받침해준다. 대형 프로젝트 수행을 위해 펀드레이징에 바쁜 세로타 관장의 움직임이 화제가 되면서 큐레이터 출신의 그를 사람들은 ‘테이트 엔터프라이즈 CEO’라고 부른다. 전문지식과 경영 마인드를 함께 갖춘 예술 경영인들이 미술관을 운영해나가는 시대가 열렸다는 뜻이리라.

세 미술관의 개관과 준비 과정에는 21세기를 끌고 나갈 중요한 문화적, 예술적 지표가 될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미술관 컨셉트를 ‘미래주의’적 방향에 맞추고 건축가들과 협업했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진행된 미술관과 건축과의 협업이 다소 수동적이었고 기존 컬렉션을 감안해 진행됐다면, 이번 퐁피두 메츠나 막시 미술관은 공간이라는 개념을 훨씬 확장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우선 퐁피두 메츠를 보자. 미국 태생의 일본 건축가 시게루 반(Shigeru Ban)은 2003년부터 7년간 퐁피두 미술관 6층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14명의 팀원과 이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재생 종이튜브로 집을 만들고 156개의 선박용 컨테이너로 미술관을 만드는 등 쉽게 예상하기 어려운 재료를 사용해 재미있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것으로 유명한 그다. 이번엔 협업자 가스틴(Jean de Gastines)과 함께 마치 중국 메시(나무로 짠)로 만든 모자를 쓰고 있는 듯한 유기적인 미술관 공간을 만들어 냈다. 기둥도 없고 마감 처리도 보이지 않는 그런 공간이다. 단지 ‘기존의 미술을 담는 공간’이라기보다 기존 컬렉션과 더불어 새로운 공간-때로 퍼포먼스나 다양한 커미션 작업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제작하고 생산할 수 있는 곳-을 제시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20세기와 21세기를 담는다는 의미에서 이름부터 MA(막)XXI(시)인 이탈리아 최초의 모던아트·건축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건축가 최고의 영예인 프리츠커 상을 수상한 이라크 출신의 자하 하디드 역시 유서 깊은 도시 로마에 미래적이고 역동적인 공간을 접목시켰다. 미술관의 벽은 우리가 생각하는 흰 벽면이 아니다. 마치 어떤 흐름을 갖고 움직이며 흘러가는 듯한 디자인이다. 방들은 고정돼 있지 않고 천장에 설치된 칸막이를 활용할 수 있어 큐레이터들의 도전정신을 북돋는다. 개관식에서 그는 “미술관은 관람객과 작가들에게 더 많은 영감을 주는 곳이어야 하며, 자연스럽게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문화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들 미술관이 미래적으로 더욱 치중하고 관심을 두는 분야는 영화·사진·퍼포먼스다. 이미 지난 포스트모던 시기를 통해 가속화되기 시작한 이 분야와 현대 미술계의 만남은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빠른 변화 속에서 미술의 새로운 언어(medium)로 부상하고 있다. 다시 말해 앞으로는 미술관에 퍼포먼스 라이브 공연장이나 대형 오디토리움 같은, 영상 및 무대 이미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조용히 걸려 있는 작품만 일방적으로 ‘보러’ 가는 곳이 아닌, 새롭게 제작되고 설치된 작품들을 ‘경험하러’ 가는 곳, 이 개념이야말로 미술관의 새로운 변화를 이끄는 가장 중요한 정책이자 트렌드인 것이다.

테이트 모던의 증축 또한 마찬가지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가 헤르조그 드 뮤론(Herzog de Muron)이 진행하고 있다. 처음 테이트 모던을 맡았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스타디움과 함부르크 필하모니 홀을 건축한 인물이다. 그는 두 개의 테이트 모던을 만드는 것이 아닌, 기존의 시설과 가장 연결이 잘 될 수 있는 미술관을 만드는 데에 방점을 찍고 있다. 공사 부지 지하에 있던 오일 탱크 공간을 그대로 사용하고, 테이트 모던 터바인 홀에서 진입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고, 겉 소재를 유리가 아닌 현 테이트와 동질감 있는 벽돌을 사용하는 것에서 그런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이 오일 탱크는 새로 만들어지는 이 11층 건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공간 멀티컴플렉스 기능이 갖춰진, 다양한 커뮤니티를 형성할 수 있는 공간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테이트 모던이 더욱 중요하게 지향하는 정책은 ‘미술관 그린정책(Green policy)’이다. 자연 통풍과 자연광을 최대로 이용해 에너지 사용을 54% 줄이고, 이산화탄소 발생률을 44% 낮춘다는 계획이다. 미술 작품의 성격 변화로 미술관들이 초대형화되어 가는 입장에서 전력과 에너지 문제는 점점 중요한 안건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정책 역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미술관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의미의 ‘신전과도 같은(Temple-like)’ 곳에서 일반인들이 와서 보고 연구하고 즐길 수 있는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플레이스’로 바뀌고 있는 듯하다. 포스트모던 이론가인 데이비드 하비가 『포스트모던의 조건』이라는 책에서 언급한 것이, 이렇게 이미 우리 가까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