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걱정
-기형도(1960~89)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춧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누군들 ‘금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가 무섭던 어린 날이 없겠는가. 누구에겐들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오지 않던 어머니가 없을 것이랴. 저물어 가는 ‘빈방에 홀로 엎드려 훌쩍거리던’ 어린 소년이 하나씩 없으랴. 우리는 어쩌면 모두 그토록 가난했던가. 전쟁과 월남과 이농과 도시 변두리의 스산한 날들을 기억하는 이 나라 평범한 모두의 깊은 곳을 이 시는 아프게 울린다. 선량하고 섬세하던 이 젊은 시인은 한 권의 시집만을 남기고 서른이 채 못 되어 하늘로 갔다.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엄마 걱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