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四時)
-김종길(1926~2017.4.1)

어릴 적 시골 옛집에서
맨 처음 배운 한시가
도연명의 '사시'였다.

"봄물은 네 못에 가득 차고(春水滿四澤),
여름 구름은 기이한 봉우리들(夏雲多奇峯).
가을 달은 밝은 빛 휘날리고(秋月揚明暉),
겨울 영마루에 우뚝 선 솔 한 그루(冬嶺秀孤松)."

그러고 보니 '사시'는
사람의 한평생에도 있는 것 같다.

청춘은 못에 가득 찬 봄물,
장년은 기이한 여름 흰 구름.
초로(初老)는 밝은 가을 달,
융로(隆老)는 한 그루 겨울 소나무.

아흔 나이를 바라보는 나 자신이 지금,
겨울 영마루에 홀로 서 있는
소나무 신세가 아닌가!


1947년 등단이니, 가장 오랜 연륜의 현역 시인이었을 김종길 선생의 부음이다. 그는 육사의 한시 '주난흥여(酒暖興餘)'의 '노석청하(老石晴霞)'에서 취한 '석하(石霞)'로 자신의 아호를 삼아 마음에 깊이 이육사를 지녔으며, 유가적 수양과 영미문학 공부를 하나로 아울러 고요하고 깊은 시의 기품을 이루었다. 60년대의 '참여 순수 논쟁'에 즈음하여 실험을 빙자한 난해 시, 참여를 빙자한 시의 도구화에 대해 공히 '주체성'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던 것은 다시 생각할수록 깊은 안목이다. 2015년 1월의 시인데, 특유의 담백함 속에 90 노객의 탄식이 깊은 울림으로 스며 있다. 길이 평안하소서.


<김사인·시인·동덕여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출처: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사시(四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