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오윤(1946~86)은 1970, 8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이단아였다. 반공이데올로기와 군사독재에 맞서 그림으로 현실비판에 나섰고, 서구 추종의 화단 흐름을 거슬러 전통 연희와 풍속을 목판으로 새겼다. 마음으로 벼린 칼칼한 그의 칼 맛은 나뭇결 하나하나에 신기(神氣)를 불어넣었다. 김지하 시인은 오윤의 목판이 “민초들의 생명력 있는 기를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현실주의 미술의 한국적 개념인 ‘민중미술’ 중에서도 오윤의 위치가 특별한 것은 풍자와 해학을 에두른 목판화에서 민족성을 승화시켰기 때문이다. 그의 손에서 태어난 노동자와 농민은 강파르지 않았다. 삶의 고통과 한 맺힘을 ‘덩더꿍’ 신명 한 판으로 풀어버리는 그의 그림 속 인물상은 보는 이를 마음 가까이 끌어당긴다.

마흔 살 이른 죽음으로 신화가 되어버린 ‘오윤 30주기 회고전’이 24일 서울 평창 30길 가나아트센터에서 막을 올린다. 최근 경매에서 판화로서는 드물게 추정가의 5~6배를 넘는 높은 낙찰가를 기록하고 있는 고인의 목판화와 드로잉·유화·조소 등 유작 250여 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오윤이 생전에 직접 찍어 유족이 소장해온 목판화 80여 점은 원판과 함께 전시돼 그 작품세계의 원형을 보여준다. 지인들이 소장하다 내놓은 미공개 드로잉 100여 점은 오윤이 평생 천착했던 ‘기운생동’의 요체를 더듬게 해준다. 요절함으로써 ‘미완의 작가’로 남은 그의 재평가를 위한 풍부한 실물이 나온 셈이다.

전시를 기획한 미술평론가 윤범모씨는 “발굴된 드로잉은 기(氣)를 중시한 선묘에 인물 중심으로 채워져 오윤이 건강한 보통사람들의 진솔한 모습에 집중했던 점을 엿보게 한다”고 설명했다.

고인의 여동생 오영아(66)씨는 “오빠는 방에 틀어박혀서 열심히 깎고 파는 등 늘 뭔가에 몰두해있었다”고 회고했다. 매제인 김익구(66)씨는 “집요할 정도로 학구적이어서 ‘마케팅-지옥도’를 그릴 때는 내게 경제전공서를 빌려가서 공부를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다. 고인이 즐겨 그린 춤추는 모습도 외삼촌이 동래학춤의 이수자여서 직접 보며 무보(舞譜)에 준할 정도로 정확한 동작을 재현했다는 증언이다.

오윤은 그림을 팔기보다는 많이 찍어서 널리 나눠주는 일에서 기쁨을 느꼈다. 출판사들과 책 표지, 삽화 포스터 작업을 즐겨 했다. 그는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숙제였다”고 말했다. ‘전방위 문화 게릴라’이자 ‘세상을 휘젓는 낮도깨비’이고자 했던 화가 오윤의 목소리가 작품 밖으로 메아리가 되어 전시장을 휘돈다. ‘국밥과 희망’.

전시는 8월 7일까지. 다음달 4일 오후 3시 기획자인 윤범모씨 사회로 고인을 회고하는 지인 좌담회가 열린다. 9일 오후 3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특강이 이어진다. 02-720-102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