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소설의 '허리' 세대에 속하는 작가들이 최근 잇달아 신작을 냈다. '90년대 작가' 중에서 주요 문학상을 여럿 수상한 소설가 김경욱(45), 권여선(51), 윤성희(43)가 우리 사회를 다양한 각도에서 반영한 신작 소설로 나란히 주목을 받고 있는 것. 세 작가는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한강(46) 못지않게 문단에서 큰 비중을 차지해 왔다는 점에서 모처럼 한국 소설이 활기를 되찾는 현상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경욱은 1993년 등단해 동인문학상을 비롯해 이상문학상, 김승옥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을 줄줄이 받아온 작가. 이번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재구성한 장편 '개와 늑대의 시간'(문학과 지성사)을 냈다. 권여선은 1996년 데뷔해 오영수 문학상,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동리문학상을 받은 작가. 지난 2년 사이 쓴 단편 일곱 편을 모은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를 냈다. 1999년 등단한 윤성희는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이수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이효석 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은 작가. 지난 3년 사이 쓴 열 편의 단편을 모아 소설집 '베개를 베다'(문학동네)를 출간했다.

김경욱의 '개와 늑대의 시간'은 1982년 경남 의령에서 일어난 우 순경 총기 난사 사건에서 착상한 소설이다. 작품 속에선 허구의 인물 '황 순경'이 총기를 휘둘러 마을 사람 쉰여섯명을 살해한다. 그 비극은 광주 민주화 운동, 미국 문화원 방화 사건, 프로야구 출범이라는 80년대 초 주요 사건들과 겹친다. 동시에 카빈 소총이 발명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시작해 한반도 분단과 6·25 전쟁, 베트남 전쟁 파병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장면도 섞여든다. 작가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사건을 서술하면서 동시에 블랙 유머를 발휘해 역사를 희롱하고 폭력이 지배한 현실을 풍자한다. 소설 속의 황 순경이 총기를 휘두르는 동안 주민들을 구하지 못한 국가의 무능과 무책임이 세월호 사건을 절로 떠올리게 한다.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술꾼들의 슬픈 인생 이야기 모음집이다. 보통 사람들이 부당하게 불행을 겪어 술에 탐닉하게 된 상황을 다양하게 조명하면서 비극 특유의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가난하고 질병에 시달리거나 고독과 우울 속에 살아가는 남녀의 안타까운 상황을 다룬다. 그러나 작가는 건조하고 절제된 문체로 비극을 견뎌나가기에 숭고해지는 삶의 태도를 그려낸다. 고통스러운 소설 모음집이지만 때로는 삶의 농담을, 때로는 삶의 환각을 다루면서 고통의 심연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관점이 성숙한 삶의 통찰을 제시하기도 한다.

윤성희의 '베개를 베다'도 보통 사람들의 소소한 일상에 밴 비애를 다루지만, 그런 슬픔을 감싸안는 유머의 온기(溫氣)로 가득차 있다. 등장인물 대부분이 비루한 인생이라 해학적인 상황을 연출하지만, 작가의 문장은 수다스럽지 않다. 오히려 지나치게 간결하기 때문에 연민을 객관화하는 소설 미학을 빚어낸다. 주로 가족과 친구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지만,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기에 독자는 그 상황의 맥락이 암시하는 의미를 음미해야 한다. 침 흘린 자국이 밴 베개에서 풍기는 냄새처럼 눅진하면서 웅숭깊은 생활의 웃음과 눈물이 감동을 빚어내며 행복한 책 읽기 체험을 안겨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