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은주·임형남의 골목발견] 일본 나오시마 섬 '혼무라 골목'

'예술섬'으로 불리는 일본 나오시마(直島)에는 관광객이 무척 많이 온다. 산업이 바뀌면서 쇠퇴한 섬에 어떤 기업이 장시간 투자하고 개발하여 예술섬이 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하고, 오늘도 항구도시 다카마쓰(高松)에서 나오시마로 배들이 오가며 그 스토리를 듣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다. 베네세 재단에서 운영하는 미술관 영역으로 가는 사람도 많지만, 오래된 마을인 혼무라(本村) 골목을 구경하는 사람도 많다.

이에(家) 프로젝트는 오래된 마을을 예술로 살리는 아트 프로젝트이다. 7개의 낡은 민가를 보수하여 '집'이라는 공간 그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든 것인데, 마을에서 점점 늘어나는 빈집에 대하여 나오시마에 미술관을 건립하는 등 오랫동안 열심히 투자하고 있는 베네세 측에 협조를 요청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프로젝트의 성공은 세계 곳곳의 마을에 자극을 주었고, 특히 우리나라는 가장 많은 자극과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많은 공무원, 예술과 도시 전문가, 건축가들이 다녀왔고 그 성공을 우리의 마을에 이식하고자 노력하는데, 사실 이 마을의 성공을 쉽게 일반화하고 모방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마을로 들어가면 평범한 집들이 들어차 있는 골목이 나오고, 중간중간 조금씩 개조한 집이 나온다. 어떤 집은 시간을 전시하는 집이고, 어떤 집에는 방 안에 동백꽃송이가 깔려 있는 그냥 전시장이고, 어떤 집은 건축가 안도 다다오 박물관이고, 어떤 집은 절을 개조한 미술관이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전시장이라는 말로는 다 표현되지 않는 묘한 예술 공간들이다.

사실 오늘날의 예술이라는 것은 경계가 아주 희미하다. 공기와 물처럼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넓디넓고 아주 보편적인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작품 가격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식의 동네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은 돈으로 환산하고 일부가 독점하는 자본주의 예술의 폐해에 대한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한다.

큰 공터를 앞에 두고 있는 커다란 집 입구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미나미데라(南寺)'는 제임스 터렐이라는 작가가 만든 '달의 뒤편'이라는 작품이다. 집은 검은 나무로 지어져 있고 예전에 절이 있던 자리에 안도 다다오가 설계해 지었다. 그 줄의 끝에서 기다리면 안내하는 할아버지가 나오고 사람을 여덟 명 정도씩 끊어서 두 줄로 인도한다. 어두울 테니 벽을 손으로 더듬으며 들어가라는 말이 들린다. 문도 없이 벽을 돌아서 들어가는데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진다. 요즘은 아주 만나기 힘든, 그야말로 '칠흑 같은' 어둠이고, 내가 아무리 손을 들어 눈앞에 들이대도 전혀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렇게 꺾어져 들어가면 이제 벽 쪽에 붙어 있는 나무 벤치에 앉으라고 한다. 그리고 끝이다

우리가 보는 것은 어둠이고 정적이다. 몇 분을 그렇게 아무런 소리도 없이 앉아 있다 보면 전면에 희뿌연 얼룩 같은 것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리고 벽 쪽으로 가느다란 빛이 보인다. 안내한 이는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저 빛은 원래부터 있었노라고. 그리고 우리가 알아채는 데 몇 분이 걸렸다고 하면서, 이리로 다가와서 확인해보라고 한다. 사람들은 부스스 일어나서 그 빛을 확인하러 걸어간다. 맞은편 벽의 끝에는 희미하게 빛을 비추는 광원이 있었다. 우리는 기껏 어둠에 익숙해졌는데 다시 빛의 세계로 나가는 것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기도 하며 "예술은 사기"라고 말한 백남준의 말을 언뜻 떠올리기도 한다.

미나미데라를 나와 길을 조금 걸으면 작은 집에 '안도 뮤지움'이라는 이름이 걸려 있다. 겉보기에 그리 크지 않은 집인데, 뮤지움이라 이름 붙인 게 재미있다 생각하며 들어간다. 역시 카메라를 들이대지 말라는 경고를 받는다. 그들은 친절하고 상냥하지만 무척 단호하다. 물론 전시장에 경건하게 작품을 감상하러 들어가는 것은 당연하지만, 일본의 많은 장소는 엄숙과 경건을 좀 지나치게 강요한다. 사찰, 박물관, 정원, 심지어 차를 마시러 들어간 찻집조차 그런 자세를 강요하고, 사람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앉아서 경건하게 경청하고 응시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좀 전에 터렐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처럼 아주 희미하고 밍밍한 광원 정도일 경우가 많다. 이런 것을 허무하다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라고 관조해야 할지. 아무튼 카메라 렌즈를 땅으로 향하게 어깨에 걸어 메고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간다.

그 작은 집 안에는 마치 앨리스가 사는 이상한 나라처럼 신기한 공간이 펼쳐진다. 작은 집 안에 구멍을 파고 감쪽같이 건물을 들여앉혀 놓고 있었던 것이다. 기존의 나무 구조물을 이리저리 피하며 콘크리트 구조물을 설치하여, 반 층 낮은 방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들어가면 마치 토굴 같은 방이 하나 나오고 그 입구에는 안도 다다오의 데뷔작이며 출세작인 '스미요시 주택' 모형이 전시돼 있다. 어둑하고 좁은 방 안에는 박물관 입구 마당에 설치된 투명한 유리 고깔이 불러들이는 빛이 은은히 퍼진다. 그 희미한 빛과 작은 토굴이 전부다.

다 그런 식이다. 오래된 작은 신사를 개조해 언덕 위에 설치된 작품은 유리로 만든 계단이 지하의 토굴로 빛을 끌어들이고, 우리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가는 좁은 통로로 들어가서 그 빛을 반드시 보고 나오고야 만다. 마을 곳곳은 컬트적인 벽화 대신 실로 사람이나 고양이 등을 유머러스하게 그려 넣거나, 대문에 다채로운 휘장을 걸어 놓는 등 과하지 않은 장식으로 꾸며져 있다. 그 과하지 않음, 즉 절제가 이 예술섬에서 가장 돋보이는 미덕인지도 모른다.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들여다보고 진지하게 탐구하며 섬을 즐긴다. 인구의 감소세가 줄었다고는 하는데 아직도 여기저기 빈집은 많이 있고, 늘어난 관광객 때문에 민박은 늘 부족하고 항구는 늘 부산하다. 그 안에서 느낀 감정은 마치 봄여름가을겨울 네 계절을 한 장소에서 동시에 겪는 듯 이상하고 오묘했다. 마치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센이 부모와 함께 동굴을 지나고 개울을 건너서 들어간 마을처럼, 바닥에 고요와 경건과 많은 분량의 예술이 잔뜩 고여 있다가 사람들이 다가가면 하나씩 일어나곤 했다.

과연 관광객이 늘어났다고 해서 마을이, 섬이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을까? 예술이 투입된다고 해서 모든 병이 고쳐지고 되살아나고 꽃이 피고 나비가 나는 것은 아니다. 예술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물론 비어지고 버려지는 동네보다야 낫고 훨씬 가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자칫 '예술만병통치교'라는 이상한 종교로 번져서 애먼 동네마저 모두 예술로 회칠되는 일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들어 부쩍 예술을 앞세우는 동네 개조주의자들에게 드리고 싶은 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