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은 1623년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로 야당인 남인(南人)의 고장이었다. 집권 여당인 노론(老論)으로부터 끊임없는 핍박을 받았다. 경북 지역 남인 명문가 후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조반정 이후로 300년 칼바람을 견뎠다'는 표현을 쓴다. 필자는 기호학파의 노론 분위기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영남 남인들이 겪은 이 '칼바람'의 실상을 처음에는 잘 몰랐었다. 알고 나서부터는 참으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대구 옻골의 남인 명문가 '백불고택(百弗古宅)' 역사는 'TK남인'이 핍박당한 사례 모음집에 해당한다. 이 집안에서는 부노(府奴)가 2명 있었다. 부노는 백불고택에서 30리 떨어진 거리에 있었던 대구부(大邱府 또는 慶尙監營)에 파견시켜 놓았던 노비를 가리킨다. 경상관찰사가 백불고택에 방문하려는 기미가 보이면 이 사실을 바로 달려와서 미리 보고하는 일이 주 임무였다. 조선 후기 경상관찰사는 여당인 노론이 부임하기 마련이었고, 대구의 일급 양반 집안인 옻골의 최씨 집안을 우선적으로 제압하거나 노론으로 입당시키기 위해서 자주 방문을 하였기 때문이다. 집안 종손은 부노가 30리를 달려와 관찰사가 방문할 것 같다는 기별을 하면 그 즉시로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다른 지역으로 피신을 하였다. '종손이 출타 중이라 집에 없습니다'.

마주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스트레스였다. 그러면 보복을 한다. 보복에는 3가지 유형이 있었다. 첫째는 집안의 상속 문제에 개입하였다. 윗대에서 이미 유산 상속이 끝나버린 문제를 들추어서 집안 내부에 분열을 조장하였다. 유산 상속을 적게 받은 후손을 부추긴다. '너희는 부당하게 적게 받았다. 내가 도와주겠다. 소송을 제기해라. 그러면 내가 편들어 준다'는 식이었다. 두 번째는 동네 입구에 풍수 비보용(裨補用)으로 파 놓은 연못을 문제 삼았다. '호화로운 시설이다. 아랫동네로 내려갈 농업용수를 이 연못이 막고 있다'고 고발하여 결국 종손이 전라도 운봉(雲峰)으로 유배를 가야만 하였다. 세 번째는 승종(承宗) 문제였다. 200년 전에 결정되었던 종손 승계를 관찰사가 개입하여 갑자기 뒤집는 방법이었다. 집안에 엄청난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걸 보면 역사는 인과(因果)의 반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