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서 존경받는 양반 집안이 동구 둔산동의 옻골(漆溪)에 400년 동안 세거(世居)해 오고 있는 경주최씨 집안이다. 조선조에 대구에서 배출한 인물을 꼽자면 3명이 있다. 시서(詩書)에는 서거정 선생, 도학(道學)에는 김굉필 선생, 경세(經世)에는 이 집안의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1705~1786)이 꼽힌다. 그래서 백불고택(百弗古宅)이다.

팔공산 자락이 동남쪽으로 구불구불 30리를 내려와 집 뒤의 대암(臺巖)에서 한번 기운이 뭉쳤고 그 밑에다가 남향으로 동네 터를 잡았다. 소쇄(瀟灑)한 기운이 감싸고 있는 유서 깊은 동네에 들어서니 왠지 모를 뭉클한 감정이 올라온다. 마치 연어가 10만리 태평양 바다를 떠돌다가 고향인 강원도의 남대천(南大川)에 돌아왔을 때 느끼는 그 어떤 회귀감(回歸感)과 비슷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옻골 최씨의 종가인 '百弗古宅' 이름은 '百弗能 百弗知'에서 유래하였다. '백 가지 능한 것도 없고, 백 가지 아는 것도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백불암은 이웃 동네의 가난을 해결해준 경세가였다. 당시 500가구가 살던 대구 부인동(夫仁洞)의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하여 3년 동안 잘사는 사람 5인에게만 기부를 하도록 하였다. '선공고(先公庫)를 설치하여 부자가 먼저 모범을 보이도록 하고 없는 사람들 세금을 대납해준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휼빈고(恤貧庫)'를 설치하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땅을 싸게 빌려주고 양식을 빌려주어 농사를 편하게 짓도록 하였다. 향약 8조목을 지키도록 하여 동네 기강을 잡았다. 그렇게 하자 유랑민이 없어졌다. 이 고마움을 전하기 위하여 부인동 사람들은 1750년대에서부터 1950년대까지 200년 동안이나 백불고택의 역대 종손이 사망하면 꽃상여를 만들어서 보내는 전통이 이어졌다고 한다. 왜정 때인 1941년의 대흉년에는 13세(世) 종손인 최두영(崔斗永)이 조선식산은행으로부터 1만5000원을 대출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20억원에 해당한다. 굶고 있는 동네 사람 수백명에게 공짜로 나누어주었다. 6·25 때 좌익들이 이 집을 '불지르자'고 선동했지만, 동네 머슴들이 '그 집 어른이 우리한테 어떻게 했는데'라며 막았다고 한다. 대구는 뿌리가 살아 있는 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