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서북해안의 바닷길을 걸으면서 바쇼의 시구는 더 날카로워지고 서술은 극도로 억제된다. 문장은 형태만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이 바닷길은 적막하고 물결 높다. 산맥이 바다로 내리꽂히면서 마을은 물가로 바짝 내몰려 있다. 바다에는 마음과 시선이 머물 곳이 없다. 그 무한공간은

　＂거친 바다여

사도(佐渡)쪽으로 기우는 은하수” 라고 표현되어 있다. 섬과 은하수 사이에 날뛰는 바다 전체를 배치함으로써 붓질 한 번으로 황량한 무인지경을 드러낸다. 정(靜)과 동(動)이 같은 화면에 겹쳐져 있다. 말을 감추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을 드러내는 바쇼의 솜씨다.

사도는 니가타 북쪽의 섬으로, 오래전부터 범죄자들을 몰아넣은 유배지다. 그 유배지의 밤하늘 위로 은하수를 그리면서 바쇼는 연민을 말하지 않는다. 연민은 막막한 바다에 가득 차 있다. 이치부리는 그 해안선에서도 가장 험한 길이다. 해안절벽과 날뛰는 파도 사이의 가파른 바윗길을 바쇼는 걸어갔다. 파도가 사람들을 휩쓸어가서 부모와 자식이 서로 알 수가 없다고 해서, 그 해안 마을의 이름은 지금도 오야시라즈(親不知, 부모 모르고)다. 바쇼는 1689년 8월 26일 이 마을에 도착했다. 이치부리 바닷가에는 여행자를 통제하고 검문하는 관소(關所)가 있었고 병력이 주둔했고 숙박시설이 있었다. 그러니 마땅히 유녀(遊女)들이 가게를 차렸다. 에도시대의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도쿄에서 교토에 이르는 동해도 여행길의 53개 숙박처의 풍속을 그린 화집을 남겼다. 그 그림 속에서 술집 여자들은 행인의 옷자락을 잡아 안으로 끌어들이고 사내들의 발을 씻긴다. 바쇼시대의 이치부리 관소의 풍속은 그 그림과 별 차이 없었을 것이다. 사나운 파도가 몰려오는 해변 마을의 여인숙에서 바쇼는 유녀와 같은 지붕 아래서 잤다. 유녀는 옆방에서 따로 잤다는데, 인기척은 느낄 수 있었다. 아침에 바쇼는 시를 썼다.

　＂한 지붕 아래서 유녀와 잤구나

싸리 꽃과 달.”


　바쇼는 유녀와 자신의 구도를 싸리 꽃과 달에 비유하고 있다. 땅 위에 핀 싸리 꽃과 하늘에 뜬 달 사이의 그 광막한 공간을 달빛이 메우고 있다. 달빛은 싸리 꽃에 내려앉는다. 그래서 싸리 꽃과 달은 넘을 수 없는 단절인 동시에 그리움이다. 그 양 극단이 안개처럼 스며서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이 애매함은 정갈하다.

　유녀들은 이세 신궁에 참배하러 가는 길이었다. 아침에 유녀들은 바쇼에게 보호자로서 동행해주기를 간청했고, 바쇼는 거절했다. 거기서 이세 신궁까지는 걸어서 두어 달이 걸린다. 이세 신궁은 일본 왕실 최고의 신궁으로 전국의 구도자들이 참배하러 온다. 북쪽 바닷가의 유녀들이 왕실의 신궁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유녀들이 구도하러 그 먼 곳을 가는 것인지, 길 위에서 구도자에게 몸을 팔러 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몸을 팔아가면서도 구도를 할 수는 있을 것이었다. 바쇼가 묵었던 숙소는 도라지(키교) 여관이었다. 도라지 여관은 관소의 길 건너편 언덕이다. 바쇼의 시로 이 여관은 유명해졌고 그의 후배 시인들이 일부러 찾아와 묵으며 시를 썼다. 160년쯤 뒤 이 여관에 묵은 시인 나카에 반라이(中江晩賴)는

　＂잠을 깨니 어쩐지 향긋하다

숙소의 꽃” 이라고 썼고, 그와 비슷한 시기에 왔었던 승려 시인 료칸(良寬)은

　＂이치부리여 바쇼도 잤네

으스름 달”이라고 썼지만, 모두 바쇼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후배 시인들은 바쇼의 한 가닥만 붙잡고 쩔쩔매고 있다. 도라지 여관은 산과 바다 사이에 끼여 있다. 이 여관은 1914년 소실되었고 지금은 가정집이다. 여관 마당 자리에 바쇼의 시비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작년 겨울 이 동네에 눈이 많이 내렸다. 마을은 눈과 파도 소리에 파묻혀서 겨울을 났다. 배고픈 원숭이 떼들이 밭으로 내려와 대파, 양파, 토란을 모두 파먹었다. 마을의 늙은 여자들이 바쇼 시비 앞마당에서 원숭이가 먹고 남은 토란을 캐고 있었다.

　‘오쿠로 가는 작은 길’의 방랑은 1689년 10월 초 오가키에서 끝나지만 바쇼는 그달 10일에 있을 이세 신궁의 천궁식에 참배하기 위해 다시 친지들과 작별한다. 만추의 작별은 조촐했다. 바쇼는 이 작별을

　＂조개 껍질과 속살이

헤어져 가는 가을이구나” 라고 썼다. 물리적 현상과 인간의 정한이 겹쳐지면서 가을날의 작별은 찢어질 듯 투명하다. 그리고 고요하다.

　오가키는 바쇼의 방랑의 종착지로서 많은 시비와 기념물을 세워놓았다. 오가키는 수많은 전쟁을 견디어낸 도시다. 시의 중심부를 흐르는 스문(水門)천은 오가키 성의 바깥 해자였는데, 수량이 풍부해 바다와 도시를 연결하는 운하로 사용되기도 했다. 바쇼의 시비들은 이 하천을 따라 들어서 있다. 4월 초에 벚꽃이 피어서 물 위에 늘어지면 이 하천에서 바쇼의 축제가 열린다. 꽃잎에 덮인 물 위로 배를 타고 내려오면서 바쇼의 시를 낭송한다. 어린 학생들의 작품도 물가에 써 붙여 놓았다.

　중학생 야마다는 이번 봄 학기에 2학년이 되었다. 1학년 신입생이 야마다를 선배라고 불렀다. 야마다의 시는 이렇다.

　＂봄바람이여

선배라고 불리니 간지럽구나.”


　중학교 3학년 노무라는 봄날이 노곤해서 고단한 모양이다. 노무라의 노래는

　＂조금만 더 자고 싶구나

봄날의 아침.”


　초등학교 4학년 시미즈는 지난 한 해 동안 몸이 많이 자랐다. 시미즈의 노래는

　＂봄이 왔구나

작년 옷이 작아요.”


　초등학교 4학년 오쓰키는 학교에 가서 배우고 또 노는 일에 신바람이 나는 모양이다. 오쓰키의 노래는

　＂책가방이여

꿈이 가득 담겨 있구나.”


　중학교 3학년 가와테는 아마도 풋사랑의 상실을 겪었던 것일까. 가엾은 가와테의 노래는

　＂이별하는 날

너의 눈물은 꽃이 되네.”


　중학교 3학년 가와무라는 동북의 재난 지역으로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다.

　＂동북에 휘파람새여 울어라

희망의 소리.”


　하천은 주택가의 골목처럼 마을에 바싹 다가와 있다. 그 하천을 배를 타고 내려가면 초등학교 2학년 구로미의 노래처럼

　＂배타고 내려가니

벚꽃이 따라오네.”


　바쇼는 들판 너머를 헤매는 아득한 꿈을 방목시키면서 죽었지만, 300년 뒤의 아이들은 일상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마도 노래의 미래는 이 현실성 속에서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끝)　

오가키=김훈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일본 도쿠가와 막부 초기의 방랑시인. 300년 전 인물이지만 일본에서는 대중적인 인기가 여전하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발표한 일본 작가 인기투표에서도 6위에 올랐다. 일본 전국에 바쇼 시비만 4000개가 넘는다.

※도움말 주신 분 : 김정례 전남대 일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