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의무적으로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고 기록을 남기는 기계적인 생활을 해왔다. 나라는 인간은 왜 실천하지도 않으면서 책을 읽으며 어줍지 않은 글들을 남겨왔는가? 책을 통해 빈 구석을 매꿔보려는 얇팍한 생각에서 였을까? 최근들어 사람과의 만남이 많아지면서 어떻게 하면 상처를 받지않고 지속적인 관계를 갖을 수 있을지에대해 생각하면서 피상적인 관계들로 그들을 유린해 왔던 것 같다. 이야기할 때 필터링을 하거나 나를 숨기고, 블라인딩을 하여 원천차단하거나 접근 장벽을 높이는데 주력해 왔던 것이다. 강연을 들으면서 새로운 사람과의 개입 없는 대화를 하면서 조금 더 솔직해지는 시간이 증가했다. 아쉬운 사람들이 먼저 접근해 저자세로 다가오는 건 너무도 부담스럽다.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었을 때 관심이 떨어질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상처를 받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 면역이 생길 때도 되었건만 계속 겁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서유경님의 < 치유하는 책읽기 >(리더북스, 2012)는 사람들에게, 세상에게 상처를 받아 쉽게 다시 접근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책들을 소개한다. 개인적으로는 확 끌리는 책들은 아니었지만, 치유를 받을 수 있는 책들이 많다는 것을 느끼고 마음을 치유해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독자에 따라 책에 대한 느낌이 각각 다르므로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위안을 얻으면, 소개된 책들은 아쉬운 부분으로 남겨둘 수도 있겠다.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랑이 얼마나 숭고한지 확인한다. 혼자서는 어떤 빛도 발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인해 빛을 발하는 것이리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위대한 일은 아닐까. 영혼의 빛을 밝혀줄 사랑을 하고 있다면 그대는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131p

오늘 지체장애인들과 신학교 견학을 가면서 다시 한번 그들의 부모를 생각했다. 아, 그들의 부모는 다른 부모들보다도 많은 사랑이 있어야 그들을 품을 수 있다. 눈물과 눈물로 하루 하루를 견디며, 그들이 매년 지적 성장이 지체되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겨우 몇 시간 그들과 함께하지만, 어쩌면 평생 그들을 보필해야하는 인생에 얽메인 부모들의 마음은 어떨까하는 생각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나는 제발 내 자식이 그렇게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빌까하는 생각까지할 정도로 이기적이고, 옹졸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진심으로 대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오히려 치유를 받는 시간을 보내면서 뭔가 결심까지 했다면 좋았겠지만, 그렇게 말랑말랑한 인간은 아니기에 유예와 장벽을 치기에 급급했다. 미리 시나리오를 만들고 무장하여 뒷모습을 보였다. 비겁한 인간, 용서받지 못할 인간으로 남더라도 결코 누구를 원망할수 있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책을 통해 내가 치유를 받으려는 생각은 손도 안 대고 코를 푸는 경망한 짓이며, 겸허하게 충고와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태도는 결코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용서, 치유, 사랑, 관심을 받으려는 자세가 되어있지 않은 이상, 누구의 대화도 통하지 않는 꽉 막힌 인간이 되고 마는 것이다.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그 무엇도 받을 수 없다. 치유받을 준비가 되어있고, 겸허히 상처를 드러낼 수 있다면, 저자의 글을 통해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