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엮다>

 

독특한 제목이라 계속 신경이 쓰였다.

배를 짓다, 만들다. 이런 연결이어야 신경이 안 쓰일 텐데. 배를 엮다...라니.

배를 만드는 데 어떤 대단한 장인 정신이 들어가 있기에 ‘엮다’라는 표현을 쓰나.

 

하고 봤더니...

<대도해>라는 국어 사전, 아니 우리가 볼 때는 일본어 사전이겠구나, 을 편찬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사전 편찬 작업을,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일에 비유하여 쓴 말이렷다.

“사전은 말의 바다를 건너는 배야.”

새삼 참 괜찮은 비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전을 정독하는 일 같은 건 없이 학창시절을 보내왔고, 딱히 사전의 중요성이라든지 사전 만든 이의 노고 같은 건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니 생각했다 해도 잠시잠깐이었을 테지만, 그렇게 살아왔는데, <배를 엮다>에서 본격적으로 사전 편찬자의 삶에 대해 조명을 하니 그들이 위대해 보이는 것은 오로지 작가의 역량 때문?^^

 

 

겐부쇼보 사전편집부에서 사전 만들기에 일생을 바친 사람들의 노력과 열정과 사랑에 관한 이야기. 라고 짧게 요약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그들만의 기나긴 역사가 담긴 이야기이다. 사전 한 권 만드는 데 이렇게 오랜 기간이 걸린단 말이야? 하나의 사전에 해마다 증보판이니 개정증보판이니 하는 그 짧은 한 구절을 새기는 데 엄청난 세월과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사전 종이를 만드는 데도 제지 회사 사람들의 장인 정신이 있었기에 미끌거리는 감촉과 손에 착착 붙는 손맛, 그러면서도 뒷면이 비치지 않는 고도의 세심함이 결합된 최상의 종이로 인쇄된 사전의 세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 또한...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사전 한 권을 만드는 데 기나긴 세월이 걸리기에 회사 사정에 따라 여러 번 중단 위기에 처한 사전 편찬의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전 한 권에 모든 것을 바친 이가 있었으니, 바로 교수 출신의 사전편집부 고문인 마쓰모토 선생, 일생 사전을 만들다 퇴직한 아라키, 영업부에 있다가 사전편집부로 스카웃된 마지메.

이들의 감히 범접 못할 사전 편찬에 대한 진지함은 한가하게 회사생활을 하고 진지함이라곤 없던 니시오카를 변화하게 만들었고, (마지메의 언어에 대한 재능으로)열등감에 휩싸이게 만들었고, 결국엔 (니시오카만의 성실함을)인정받고, (마지메라는 인간 자체를)인정하게 만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은, 실질적인 주인공인 마지메의 커다랗고 머쓱한 이미지가 선명하게 그려지면서 마지메가 사는, 책으로 뒤덮인 2층짜리 목조가옥을 한 번 둘러보고 싶어지게 만든다.

쓰윽 다가와서 체온을 전하고 가는 고양이 도라, 일본 옛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달의 정령 가구야히메를 닮은 아름다운 가구야 등 마지메의 주변을 채워주는 인물 이야기도 소소하지만 정겹다.

세월이 오래 걸리는 사전 편찬 작업을 하는 동안, 마지메가 살았던 하숙집의 주인이자 결국엔 마지메의 아내가 된 가구야의 할머니였던 다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끝끝내 사전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마쓰모토 선생도 생을 다하게 되었다.

슬프지만 그래도 결국, <대도해>는 이루어졌다.

 

이것으로 미우라 시온의 책을 세 권째 읽게 되었나.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 <배를 엮다>

미우라 시온은 나날이 발전해 간다.

시작해볼까...진행되었나...드디어 완성.

내가 읽은 세 권을 연결선상에 두고 보자면 이 정도의 느낌이다.

앞으로는 상큼발랄한 것을 기대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묵직한 것을 기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실망하지 않고 있다. 앞날을 더 기대해봐도 될까...

배를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