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저맨>

지겨운 건달, 진저맨

 

낯설다. 낯설어도 무지 낯설다.

작가가 재현해내고자 했던 이 세상에 없던 새로운 인물, 탄생이다.

어떤 작자인지, 그 얼굴 한 번 보고 싶다, 할 정도로 지긋지긋하면서도 너절할 것 같은 인생을 살고 있는데도, 이름조차 욕과 비슷한 시배스천인데도, 궁금해지는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는 모두가 한 번 스윽 보기만 해도 예의를 차리게 되는 대학생이기 때문이다.

외상으로 장을 보기 위해 침실에서 푸른색 담요를 난도질해서 목에 두르고 가장자리를 밀어 넣고는 트리니티 조정부의 푸른색 유니폼을 가장해도, 용납이 되는 고상한 외모를 타고났기 때문이다.

분명히 이 남자를 선택하면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될 것이고, 고생문이 훤할 것이라는 게 웬만한 사람들의 눈에는 다 보여도 일단 맞닥뜨리면 그 매력에 빠지게 되는 일명, 나쁜 남자 스타일 되시겠다.

아일랜드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 법대생인 시배스턴 데인저필드.

그는 무엇으로 사는가?

 

대학생이라는 자부심?

아내와 딸을 위한 무한정의 헌신?

무지갯빛 앞날에 대한 원대한 계획?

 

따위는 전혀 없는 인간이다.

지금의 내 나이에 스물일곱의 시배스천같은 동생이 있다면, 딱! 뒤통수를 후려치면서 “정신차려!”라고 한 마디 해주고 싶은 인물이다.

 

왜 그렇게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바로 오늘이 세상이 끝나는 날’인 것처럼 사는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

처자식은 내팽개친 채 술과 여자에만 빠져 사는 것.

시배스천은 오직 그런 것들만 입력되어 있는 흐느적거리는 생물이다.

 

도대체 머릿속에 어떤 생각이 들어 있어야만 그런 식으로 살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들어 있지 않고, 책 속에 밝혀진 바로는 오직, 아버지로부터의 유산만을 기대하며, 눈앞의 걸리적거리는 문젯거리로부터는 도망치기, 회피하기 바쁘다.

처음부터 그의 삶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사는 인간이야.

어디 ,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시지?

하는 듯이.

시배스천은 주위의 시선은 아랑곳 않고, 여자에게 작업 걸기, 섹스에 탐닉하기, 돈만 생기면 술마시기, 친구와의 우정을 숭상하기 등에 그 날 하루를 바친다.

 

걱정하지 마라. 절망하지 마라. 고민하면 머리털만 빠진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려라(..) 대부분의 갑판이 물을 뒤집어써도 나는 이 폭풍을 이겨낼 것이다.-460

 

지금은 예수가 탄생하기 전날 오후다. 인간에 대한 선의. 선의만이 아니라 돈도 몇 파운드 주면 어떤가? 나는 여위고 지쳤지만, 아직 의과대학이나 하숙집 여주인에게 몸을 팔 만큼 타락하지는 않았다.-460

 

타락하기는 싫어하면서, 방종과 무질서의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시배스천.

그래서, 어쩌라고? 내가 이렇게 사는데 뭐라고 말할 거냐, 너희들은? 하고 시배스천이 대들 듯이 말하면,

딱히 뭐라 할 말이 없다.

전후의 불안과 허무를 대표하는 또 하나의 소설에 나오는 문제적 인물이라고 이름지을까나?

아니, 아니, 아니.

그 어떤 테두리에도 갇히기 싫어하는, 나름의 고집이 있는 시배스천이다.

그래 그냥 그렇게 살아라, 시배스천. 너의 인생이고, 니가 선택한 거니까.

그래도 왠지 뒤돌아보게 되고,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히 매만져주고, 내게 남는 어여쁜 블라우스 한 장 챙겨주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구겨지고 정신병자 취급받고 시들었어도 당당한 시배스천의 모습에 조용히 박수를 쳐주는 것으로 이 책 읽기를 마무리하고 싶다.

 

 

진저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