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레 빌라 연애소동>

 

아~아쉽다.

이 책을 덮으면서 든 생각이다.

남의 일에 관심 갖지 않으며 살고 있지만,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면야 이야기가 달라지지 않겠는가.

제목도 유쾌한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

 

미우라 시온이라...내가 아는 작가였던가?

하고 작가 소개를 보니, <가무사리 숲의 느긋한 나날>이라는 책이 있다.

음~예전에 읽었던 책이군.

느긋한 제목에 딱 맞는 한가로우면서도 따뜻한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이하게도 가무사리 숲에서 착실히 인생 수업을 해 나가는 해맑은 청년의 잔잔한 이야기였었지, 아마.

그러고 보니, 꼭 <고구레 빌라 연애소동>같은 글을 쓰게 생겼더라니...

^^이 작가의 책 한 권 읽었다고, 아는 척하는 꼴이라니, 내가 쓰고도 웃긴다.

 

고구레 빌라는 70대 고구레 라는 할아버지가 주인으로 있는, 허름한 2층 목조 건물이다. 그 주인 고구레 할아버지는 집이 따로 있는데도 혼자 고구레 빌라에 나와 산다. 목적은? “주책 없다 하겠지만 섹스가 하고 싶네.”

푸하하

하고 시원스레 웃어야겠지만, 이제 곧 마흔을 앞두고 있는 나는 곧 30년 정도 후에 닥칠 일이므로, 호탕하게 웃어젖힐 수가 없었다.

아주 심각하게 이마를 접고 주름을 만들게 되는 상황인 것이다.

나이 든 사람의 섹스라니. 이렇게 드러내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뜬금없이 발설해도 되는 말이었나?

그렇지만, 말이 나온 김에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한동안 골똘히 고구레 할아버지의 머릿속을 따라 다니면서 나의 미래를 상상해 보기도 했다.

아내에게 섣불리 “한 번 하자.”라고도 말 못할 그럴 성질의 것이 되어버리나, 늙은이의 섹스란?

성이란 것의 담론에 지나치게 인색한 우리네 사고방식으로는 속으로 끙끙 앓는 고구레 할아버지의 고민이 남의 것 같지가 않으니 하는 말이다.

음, 음...

 

그렇게 고구레 할아버지의 쇼킹한 반격에 할 말을 잃은 사이, 고구레 빌라에 세들어 사는 이들의 연애사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지면서 이야기는 상큼 발랄하게 이어진다.

꽃집에서 일하는 마유는 얼떨결에 삼각관계의 주인공이 되어 있고,

불임인 여대생 미쓰코는 어느날 들이닥친 친구의 아기 때문에 생명의 탄생에 맞닥뜨리게 되기도 한다.

그 와중에 미쓰코의 위층에 사는 남성은 미쓰코네 천장에 구멍을 뚫어 미쓰코의 성생활을 훔쳐보다 딱걸리지만 뻔뻔스럽게 그녀의 인생에 감히 조언을 아끼지 않는 웃기지 않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꽃집 마유네 주인 부부는 찻집과 꽃집을 운영하며 하루종일 얼굴을 맞대고 사는데, 남편이 바람을 피우게 된다.

또한 그것을 알려준 사람이 커피 맛을 보고 거짓말을 하는지 안하는지 알아낼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가진 능력자라면...

이야기는 엮이고 엮여 급기야 조폭 남자와 전철역 기둥에 솟아난 돌기 때문에 급 친해지게 되는 기묘한 여성까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엽기적인 소재들로 가득 채워져 있지만, 어찌나 있을 법한 일로 교묘게 잘 연결했는지, 우리 동네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어느 한 “빌라”의 이야기라 해도 믿을 정도로 정교하다.

한꺼풀 벗겨보면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만 있을 것 같은...

 

꺼리지 않고 내숭 떨지 않고 화끈하게 저질러지는 일들에 내 속이 그만, 박카스 두 병쯤을 원 샷 한 것 같이 화~악 하고 밝아져 온다.

이야기가 끝날 즈음엔 못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에 아니, 벌써 끝이야?를 외치게 된다.

 

 

고구레빌라연애소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