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인 아들에게 먼저 읽어보라고 추천해 주었고, 후에 내가 읽었다.
아직 책을 읽기전에 느낌이 어땠어?라고 물었더니 "주인공이 너무 불쌍했어요"했다.
줄거리를 이야기하는 아이에게 책을 읽고 나서 같이 얘기나누자고 했었다. 아직 나누지는 못했지만 이 책을 매개로 할 이야기가 많을듯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처음엔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단짝 친구인 소미와  해미가 놀이터 그네에 앉아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 너무 어린애답지 못한게 탁 걸렸다.  "시골은 사람 사는 데 아니니?" 사실 이런말은 5학년 여자아이 입에서 자연스럽게 나올법한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던거 같다. 어쩌면 설거지나 청소, 잡다한 살림살이에 익숙한 여자애들에게선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소미나 해미의 경우와는 달랐지만, 어쨋든 바쁜 일손을 도와야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던 어린나를 만나는 듯해서 불편했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소미와 해미. 
어떤 사연으로 인해 그리 되었는지는 단서를 찾을수가 없다. 책을 읽는내내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을 기다렸지만 끝내는 찾을 수 없었다. 사고로 부모를 잃었는지, 이혼을 했는지 등등.. 그런 배경을 알면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것 같았고, 현실에서 만나는 비슷한 부류의 아이들에게 더 좋은 이야기들을 들려줄 수 있을것 같았다.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소미와 해미는 그들의 평범하지 않은 환경만큼이나 조화롭고 적절하게 어울릴 수 없는 아웃사이더다. 아이들의 주변엔 그저 평범한 가정의 철없는 아이들이 미성숙한 어른들에게서 교묘한 방법으로 친구들을 골탕먹이는 방식들을 모방학습하고 있고, 아무런 도움이나 지지를 받을 수 없는 빈약한 배경을 가진 소미 해미같은 아이들은 일방적이고 불평등한 차별을 감수해야만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편견과 불평등에 대한 문제들은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끊임없이 되풀이 되고 있는 불편한 진실이다. 

"애들이 고아라고 놀려요. 선생님이 게시판에 주소가 있는 명단을 쫘악 붙여놔서 반 애들이 모두 알아버렸어요."  가족을 갖지못한, 혹은 가족에게 버림받은 상처를 안고 사는 보육원 아이들은 '고아'라는 말에 유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 엄마들이 챙겨준 음식이나 물품을 자랑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그애들이 느낄 외로움과 결핍감, 슬픔, 결국엔 버림받았다는 것에 대한 분노까지.... 조금이라도 아이들의 심리를 이해하는 선생이라면 결코 하지 말았어야 하는 실수라고 생각한다. 일반 가정에서 커가는 아이들도 스트레스로 인한 손톱물어뜯기 같은 행동은 자주 목격된다. 하지만 보육원 아이들의 그런 행동은 유달리 문제행동으로 보여질 수 있으며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인해 그렇잖아도 힘든 아이들을 더욱 위축되고 주눅들게 할 수 있다. 

만약 소미와 해미가 좀 더 인간을 이해하는, 아이들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성품을 가진 선생님을 만났다면 어땠을까. '어차피 자신들같이 힘든 처지의 애들에겐 관심조차 없으니까'하는 절망적인 생각은 하지 않았을것이다. 최소한 인간에 대한 믿음은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최강미녀파>의 아이들, 특히 은지와 은지 엄마의 모습, 은지 엄마와 통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공감이 되었고 우울감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전형적인 모습들이어서 낯설지 않았고 불편했고 화도 났다. 
겉으로는 모범생인척 하면서 뒤로는 별짓 다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을 비호하는 어른들의 그릇된 처사에 화가 나는건 나의 어떤 경험과 닿아있기 때문일까? 

암울한 현실이지만 어디에도 기댈 수 없는 해미의 처지가 너무 안타까워 가슴아팠다.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유일한 친구 소미가 시골로 떠난 후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해미가 느꼈을 외로움과 고립감은 비슷한 처지를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려울 것 같다.
최강미녀파의 아이들과 해미의 처지는 케이크하우스의 진열장안에 곱게 장식된 부드러운 무스케이크와 해미가 초라한 단골 가계에서 사먹는 싸구려 젤리처럼 닿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 
우아하고 품위있는 겉모습속에 허풍과 교만과 속물근성을 숨기고 있는 은지 엄마와 초라하고 보잘것없지만 진실한 삶을 살고 있는 해미 할머니의 모습에서처럼 절대로 어울릴 수 없는 세계인 것이다.

해미가 상처를 감수하며 지켜낸 '우정의 규칙'은 최강미녀파 아이들에게 적지않은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해미를 통해 깨달을 수 있기를.

할머니의 가방에 손을 댄 후 갈등하는 해미의 마음, 집에서 멀어지려 무작정 버스를 타고 떠나는 마음, 어두운 거리에서 느끼는 불안과 돌아와 쓰러져 잠든 자신을 걱정하는 할머니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과 가책, 드디어 최강미녀파의 아이들에게서 등을 돌리는 모습, 무엇이 진실인지 아는 수호와 피자집 언니의 조언.... 소미가 떠난 자리를 채우고 들어온 최강미녀파의 아이들을 통해 아픔을 겪긴 했지만 해미는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얻었다. 플루트 사건이 없었던들 수호처럼 속깊은 친구를 만날 수 있었을까.  상처를 다독여주는 피자집 언니와는 이후로도 계속 좋은 인연이 이어졌으면 좋겠다. 
혼자 앉아있는 해미의 옆 그네에 배려심깊은 친구가 얼른 앉아주기를...

좋은 친구, 믿을 수 있는 멘토를 만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해미를 보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식을 키우는 어른으로서 어떤 가치관과 교육관을 지켜나가야할지 새삼 되새겨 보게 되었다. 
 

 
정복현 작가님의 정성스런 사인북을 받았다. 
이 글 읽으신 분들 모두에게 따뜻한 봄날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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