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의미있는 코너를 만들어 주신 정글북님 감사합니다.
이 코너 신설에 대한 안내를 받고보니 그간 잊고 지냈던 고마웠던 사람들, 신세졌던 사람들이 마구마구 생각나네요. 살면서 조금씩 갚아야지 생각했던 고마운 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그려보면서 새삼 ’인연’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이토록 애달픈 계절에 잠시라도 그들을 떠올리며 되새길 수 있음에... 

숱한 인연들 중 가장 가슴 저릿한 한 아이가 떠오릅니다. 녀석은 초등학교 6학년이며 보육원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씩 이 녀석을 만나곤 했는데, 사춘기에 접어든 탓인지 자주 우울해하고 기운이 쏙 빠진 힘겨운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살가운 보호와 사랑을 받지못해 그늘진 녀석의 얼굴엔 깊은슬픔이 어려있고, 일회성으로 다녀가는 봉사자들의  사랑에 상처입어 어떤 사람에게도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거친 모습을 보여주곤 했습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그만큼 뒤로 물러서고, 뒤로 물러서면 그만큼 다가서며 사랑을 갈구하는 애절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상처입은 마음을 다독여주려하면 ’검열’을 두려워해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지 못했지요. 

수업이 있는날이면 가끔 사탕이며 과자, 샤프 등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물건들을 챙겼습니다.
어느 날 녀석이 제게 쪽지 하나를 주더군요. 쪽지엔 이런 문구가 쓰여있었습니다.
"선생님, 9월 **일 **생일이예요. 선물 꼭 주셔야돼요.  굵은 볼펜 꼭 사주세요!"
저는 수첩 맨 앞장에 쪽지를 붙여 녀석을 안심시켰고, 아파트 장이 서는 날 시장을 돌며 녀석이 맘에 들어할만한 물건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민한 사춘기 여학생에게 어울릴만한 물건이 없어 어쩌나! 하고 있는데 연락이 왔습니다. 받고 싶은 선물이 바뀌었다면서 ’책 선물’을 원하더군요. 얼른 주문했고, 아직 전해주진 못했지만 녀석의 함박웃음이 눈에 선합니다. 
이젠 더이상 의심없이 제 진심을 받아들일 거라는, 저와 따뜻하게 눈을 맞추고 고민과 아픔도 얘기할 거라는 믿음으로 가슴이 훈훈해 집니다.

부모의 이혼과 보육원생활. 상처가 깊은 녀석에게 따뜻한 마음의 선물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세상엔 자식을 버리는 비정한 어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아픔과 고통을 나누고 다독이며 사랑을 전하고싶은 가슴 따뜻한 사람들이 있기에 그래도 살만한 세상이라는 희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