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란 단어를 들으면 ‘미래’라는 단어가 연상된다. 예를 들면 SF 영화를 생각할 수 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차, 우주여행, 수명연장, 일상 곳곳에 자리 잡은 로봇 등등 생활 전반에 걸쳐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기술’적인 부분이 집중 조명될 것이다. 그런데 《홍성욱의 과학 에세이》는 윤리와 철학 같은 인문학적인 분야를 연결하여 과학 이야기를 들려준다. 따라서 시중에 나와 있는 과학 이론서들, 과학 현상들을 설명한 결과물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의 책이라 할 수 있다.
 
- 이 책은 과학, 기술, 사회에 대한 책이다. 최근에는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 분야를 '과학기술학' 영어로는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 Studies 혹은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라고 한다. 영어 구문을 줄이면 STS가 된다. 296p-

 

시작 부분에도 STS라는 단어를 흘려주긴 했지만 그래도 [닫는 글]에서 정리해주는 문장이 있어 내가 바라보고 있는 나무가 STS라는 분야임을 알게 되었다. 과학은 독자적인 학문으로 홀로 발전되어 온 것이 아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인물들을 통해 과학이 철학과 상호작용을 했고 때로는 미술과 상호작용함으로써 한층 더 눈부신 연구 결과들을 쏟아 낼 수 있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비트겐슈타인에게서 과학이 철학에 미친 영향을 볼 수 있다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서는 철학이 과학에 미친 영향이 잘 드러난다. 피카소나 후안 그리스 같은 입체파 화가들이 푸앵카레의 물리학과 비유클리드 기하학을 공부했던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예술가가 과학에서 지식과 영감을 얻었다면, 과학자들도 미술에서 통찰력을 얻은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갈릴레오, 토머스 해리엇, 훔볼트 등을 들 수 있다.

 

이렇게 각자 다른 학문들은 서로의 분야에 영감을 주었다.
과학은 창의성을 위해서라도 서로 다른 생각들의 연관들이 중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과학적 창의성을 위해 ‘잡종’을 주장하며 대표적인 학자로 아인슈타인의 일화를 들려주고 있다. 아인슈타인은 역학, 전자기학, 열역학의 통찰력과 문제의식을 잘 섞어서 1905년을 '기적의'해로 만들었다.

 

- 창의성을 고양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요소들 사이에 새로운 연관을 만들어내는 능력도 중요하고, 동시에 기존의 지식에 비추어 이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연관 중에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즉 한 우물을 파는 것과 경계를 넘어서 이것저것 섞어보는 능력이 모두 중요하다. 106p-

 

이 책이 과학, 기술, 사회에 대한 책인 만큼 이슈가 되었던 광우병 문제와 대운하 문제도 다시 살펴 볼 수 있었다. 지난 수십 년간 외국의 사례 조사에 따르면, 보통 사람들은 위험을 확률로 평가 하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 재앙의 정도, 통제 가능성, 평형성, 후속 세대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총체적으로 지각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해석하는 방식도 그들과 시민은 전혀 다름을 알고 있어야 하겠다. 책에서는 사회 갈등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 할 수 있는지 원칙들을 설명해준다.

 

전쟁은 과학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시기라고 한다. 전쟁 무기 개발이 곧 과학 기술 경쟁이기 때문이다. 제 1차 세계대전은 독가스를 개발해 사용했으므로 '화학자들의 전쟁'이라 부르는 반면 제 2차 세계대전은 효과적인 레이더 시스템을 개발해 사용하였기에 '물리학자들의 전쟁'이라고 부른다. 칼의 양날을 가지고 있는 과학. 아무리 과학자들이 과학기술을 가치중립적인 것이라 본다 할지라도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무관심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STS는 결국 과학기술이 시민과 사회의 긴밀한 연결 속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나무의 뿌리와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뿌리가 튼튼해야 수많은 가지가 뻗어나가듯 과학 역시 그 본질과 기초가 튼튼해야 다양한 분야로의 발전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