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그라미 씨, 벽돌 씨, 네모 씨, 성냥 군, 도미노 장군 등 도형들에게 영혼이 생겼다.
그들의 대화 또는 실랑이를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아 웃음이 나온다. 
한마디로 이 책은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우스꽝스럽게 드러내는 해학 그리고 풍자가 돋보이는 책이었다.
때로는 공감을 넘어 너무 사실적이고 직설적이라 종종 쓴웃음도 나온다는 점.
그래도 철학 우화로 무겁지 않게 다가오니 다소 편하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던 것 같다.
가끔은 허를 찌르며 주제를 제대로 관통하는 문장들도 만날 수 있다.
아웅다웅 도형들의 좌충우돌 이야기. 그 속에 녹아있는 유쾌함과 통쾌함은 이 책이 주는 덤이 아닐까 싶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물질만능주의 사회를 경멸한다더니 지원금 얘기를 꺼내는 동그라미 씨.
인간을 사랑하는 박애주의자가 되겠다더니 연설이 중요하다며 적선하는 거지를 쫓아내는 동그라미 씨.
머리로는 온갖 훌륭한 사고를 하고 이해한다고 여기지만 이상과 실천의 일치는 전혀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마치 이것은 이것. 그것은 그것이라고 구분 짓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크게 다를 것은 없다고 본다. 단지 저렇게 극적이지는 않을 뿐이다.
돈에 연연하고 싶지 않지만 연연하게 되는, 아직은 가슴이 아니라 머리로 더 많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천재와 바보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했던가. 책에서도 그런 간극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에서 볼 수 있었던 잣대와 줏대의 아슬아슬한 경계,
영혼에 독방이냐 아니면 개인 원룸이냐의 해석,
손님을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나뉜 가게의 흥망성쇠 등.
같은 상황이어도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관건인 것 같다.
작은 틈은 큰 틈이 되고 결국 결과는 판이해지니 말이다.

 

물론 쉽지 않다.
내가 자신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든.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남기고 싶은 것만 남기지 않던가.
그렇다. 개인은 각자의 필터가 있어 같은 내용도 다르게 걸러내는 능력이 있다.
어찌 보면 나름 신기하고 대단하다 싶기도 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응. 동그라미 씨라는 가수야. 인간은 자존심이 너무 세서 어떤 조언을
하더라도 절대 귀담아듣지 않는다는 것을 몰랐지. 차라리 그가 '우리
모두 흩어져 살자.'고 했으면 더 효과가 좋았을 텐데. 사람은 모두
청개구리거든. 반어법과 비유, 상징은 그래서 있는 거란다." (p.110)

 

"진실을 듣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나? 자기한테 좋은 대로 믿고
사는 게 사람이라는 걸 왜 모르나? 심지어 기억조차 마음대로 바꾸는 게 바로
사람이야!" (p.132)

 

이들의 관계는 참 재미있다.
어수룩한 동그라미 씨를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네모 씨.
그리고 그런 네모 씨 위에는 현실적으로 꼬집는 벽돌 씨가 있다.
하지만 항상 옥신각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따금 위로도 있어서 좋았다.
인생이 꼬여 힘든 사람이 있다면 네모 씨의 말을 읽어보기를
풀어내기 힘들다면 예쁜 매듭으로 만드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너무 괴로워. 너무 아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내 인생은
왜 이 모양 이 꼴인 건가?"
"모두가 다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 그런 괴로움이 인생의 한 부분인지도
모르지."
"희망이란 없다는 건가?"
"아니, 아무리 괴로워도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렇게 한없이 꼬이다
보면 언젠가 아름다운 매듭이 될 거야. 안 될 수도 있지만." (p.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