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란 무엇일까? 첫눈에 반한 사람을 위해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그 사랑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과 집착의 경계는 어디에서 시작될까?

이 책을 읽으면서 들던 생각은 대체로 '사랑'이라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와 동일시하는 것이 아마 사랑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사랑을 잃으면 자책감이 들고, 회의적이 되며, 나 자신을 잃은 듯한 공허한 기분이 드는 것을 아닐까. 이 책의 주인공인 케말은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퓌순이 도로, 인도, 집, 정원 그리고 방을 거닐 때, 야외 찻집, 식당 그리고 저녁 식탁에 앉아 있을 때, 그녀를 바라보는 케말이 느끼는 애착을 일컫는 말이다."라고.

이야기는 남부럽지 않은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케말이 약혼녀 시벨에게 선물할 가방을 사러 들어간 부티끄에서 우연히 먼 친척인 퓌순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30살인 그보다 12살이 어린 18살의 그녀는, 미인대회에 출전했던 만큼 뛰어난 미모였고 케말은 그런 그녀에게 빠지게 된다. 그는 어머니 앞으로 되어있는 아파트에 그녀를 불러 들이고, 그렇게 그들은 둘만의 사랑을 시작한다. 하지만 케말은 시벨과의 약혼을 그래도 진행하고, 퓌순과는 이 관계를 지속하길 바란다.

이 책의 강점은 오르한 파묵이 가지고 있는 깊이 있는 내면의 묘사이며, 그만의 독특한 서술 방식에 있다. 사랑을 잃은 케말이 느끼는 고독과 강박관념은 읽는 독자에게 고스란이 전해진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케말의 감정도 느꼈지만, 퓌순의 입장에서 케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약혼식 이후 사라진 퓌순의 마음이 전부 이해가 되었으며, 퓌순이 느꼈을 고통도 느껴졌다. 점차 앞을 알 수 없는 사건들로 빠져드는 케말과 퓌순을 보며 서로에 대한 사랑과 신뢰, 사랑의 주변에 있는 상황들이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 수 있었다. 케말과 퓌순은 다시 만나지만, 모든 사람의 사랑이 그렇듯, 평탄하지만은 않다. 케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퓌순이 있는 물 한가운데로 뛰어 들었다. 그 물 속에서 그녀를 보호해야 하지만, 너무나 다급했던 마음이 그녀를 놓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그녀를 급류 속에서 구해 물밖으로 나가 함께 살고 싶지만 사랑의 물살은 너무 세다.

케말은 자신의 이런 퓌순에 대한 사랑을, 퓌순이 닿았던 물건들에게 위로 받았다. 그녀의 귀걸이, 커피잔, 립스틱, 립스틱 자국이 묻어있는 담배 꽁초 등 그는 그녀와 관련된 모든 것을 수집한다. 그리고 그것들을 모아 '순수 박물관'을 만든다.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사랑만이 있는, 순수한 박물관이다. 책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차피 소설과 박물관의 목적은, 우리의 기억을 진심으로 설명하여 우리의 행복을 다른 사람들의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겠는가?'라고. 박물관에 있는 물건들은, 어떤 사건을 가지고 있고, 그 사건 안에는 사람이 있다. 그렇기에 그 물건에 담긴 사람의 진정성, 행복, 슬픔 등은 박물관에 남아 변하지 않고 보존된다. 아마 케말 또한 이런 마음으로 퓌순에 대한 사랑, 변하지 않는 퓌순이라는 존재 자체를 남기고 싶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나는 사랑을 느꼈고, 사랑을 둘러싼 환경을 보았고, 사랑의 이중적인 모습과 사랑의 마지막을 확인했다. 오르한 파묵이 가지고 있는 힘은 대단했다. 그의 소설은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두 권의 분량에 담긴 터키의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재미도 있는 묵직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