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수도원의 비망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포르투칼 국적의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이야기 속에서는 생각지 못한 소재들이 많이 등장한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 '눈먼자들의 도시' 는 그의 상상력과 현실과 허구를 통한 풍자를 잘 보여주고 있고, 이번에는 어떤 독특한 소재가 나올까 궁금하게 만든다.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책은 이렇게 시작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평등하게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일월 일일 영시 이래로 전국에서 사망자가 한명도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죽음이 중지 된 것이다. 나는 이런 사실만으로 그 혼란과 오싹함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영원히 침범할 수도 없고, 가질 수 없었던 영생을 누리고 싶다는 꿈이 이뤄져서 기쁨이라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자연의 규칙이 깨져버린 공간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죽음이 중지된 이후로 아파서 죽거나 떨어져서 죽거나 심지어 자살을 시도하며 아무리 죽으려 해도 어느 누구도 죽을 수 없었다. 벌써 죽어야 할 사람들이 죽지도 살지도 못한 상태를 유지하고, 외상과 내상을 입었음에도 죽지 않고 상태가 더 나아지도 않는 상황에서 의사의 수술도 아무런 필요가 없었다. 문제는 국경을 넘어 다른 나라에서는 죽음이 멈추지 않고 가능했고, 그곳에서만 죽음이 중지를 해버렸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영생을 이뤘다며 기뻐하던 것도 잠시, 죽음의 중지로 피해를 입게 된 종교계와 함께 장의업계, 병원관계자들, 보험업계,나이든 사람들을 돌보아야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권을 보장하라고 국가에 요구하고 나선다. 아무도 죽지않자 가장 타격이 큰 장의업계는 모든 가축의 장례 의무화를 주장하기에 나서고, 보험업계는 생명보험의 즉시해제를 요구하는 사람들로 곤욕을 치룬다. 살아도 살아있는 상태가 아닌 사람들은 죽기위해 국경을 넘어가는 일까지 생긴다. 한 가족이 노인과 아이를 국경을 걷너 죽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도덕적 비난이 쏟아지지만, 시간이 갈 수록 국경을 넘어 죽음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집안에서 죽어가는 사람의 자살을 책임져 주는 일에 마피아와 조직까지 개입한다. 영생을 반기던 사람들은 이제 죽음을 원하게 되었다. 다시 죽지 않는 다면 미래가 없는 도시가 되어버린 것이다.

 

죽음은 모습을 드러내며 새로운 방법으로 죽음을 전달하겠다며 방송사 사장 앞으로 편지를 보내온다. 그리고 7개월간의 혼란이 종식되면서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그건 나를 그렇게 혐오하던 사람들에게 언제까지나 산다는 것, 영원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맛을 좀 보게 해주려는 것이었어요. 물론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언제까지나라는 말과 영원히라는 말이 우리가 흔히 믿고 있는 것처럼 동의어인지는 잘 모르겠다는 걸 솔직히 고백해야겠군요."

앞으로 죽음을 앞둔 사람들에게 자주빛 편지를 보내고 7일의 말미를 주며 죽음을 알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에 사는 첼로 연주자에게 보낸 죽음의 편지가 몇번이고 반송되어 오면서 일주일 후 죽음을 맞이해야 할 그가 죽지 않게 되자 죽음은 직접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이 책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다음 날, 아무도 죽지않았다라는 구절로 끝을 맺는다.

 

죽음이 중지된 세계, 죽음이 없는 세계라는 발상자체가 독특한 작가의 상상력을 나타냈다. 그리고 죽음이 중지 된 혼란스러운 상황에서의 인간들이 겪는 혼란과 구성원들의 갈등을 통해서 인간의 추악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 책 역시 쉼표와 마침표외에는 제목도, 숫자도 별도의 문장부호가 없다. 그러나 긴박하게 넘어가는 상황에서 몰입하며 읽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