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 구성이 단순하고, 등장하는 인물도 책의 분량에 비해 손에 꼽을만큼 적다.

나는 텍스트의 내용보다는 이 책에서 작가가 추구하고자 했던 의식의 흐름을 따라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읽는 분에 따라 공감할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제 1부에는 주인공 미하엘과 한나의 만남, 그리고 그들의 애정 관계가 다소 선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작가는 이런 자극적이고, 독자에 따라서는 저급하다 평할 수 있는 내용을 왜 소설의 맨 앞에 배치했을까?  그것도  열다섯 살짜리 소년과 서른여섯 살의 여인이 형성한 연인관계는 분명 도덕적으로 파격에 가까운데......

1990년대 초로 기억하는데,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여드름이 난 십대의 소년과 조금 뚱뚱한 사십대의 여인이 게스트로 출연했는데, 자신들이 연인관계임을 방청객들 앞에서 떳떳이 공개하는가 하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결혼까지 생각한다고 했다.  이에 대하여 방청객 및 전화 참여자의 찬반 양론이 팽팽했었지만, 나의 도덕적 관점에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었다.

십대의 남자는 여인의 아들과 친구라는 점, 그리고 나이에 비해 매력적이라고 느낄 수 없었던 여인의 외모에 소년이 열렬히 빠져들었다는 점, 그리고 방청객들에게 자신들의 첫관계를  거리낌없이 밝혔던 당당함.  그들은 헛간(barn)에서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다고 했다.  지금도 생생히 떠오르는 것은 전화로 참여한 어느 여대생이 자신의 아버지도 자신의 여자친구와 결혼했는데, 그 이후로 아버지와는 만나지 않고 있다며 결혼은 제발 하지 말아줬으면 하는 호소였다.  성적으로 개방된 미국에서도 이런데, 주인공의 나이로 인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는 설정과 선정적인 묘사가 자칫 로렌스의 경우처럼 작가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될 수 있음을 작가는 몰랐을까? 

이상의 날개를 읽어 본 사람은 누구나 공감하겠지만, 의식의 흐름에 따라 스토리를 전개하는 방식은 위험하기 그지없다.  작가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독자가 따라오지 못하면 그 내용이나 작품성은 형편없이 추락하게 된다.  만일 스토리를 중심으로 하면 그 기교는 빛을 잃고, 주인공의 의식을 중심으로 하면 독자의 공감을 이끌어 내기 어렵다.  공감하지 못하는 소설을 독자가 끝까지 읽어주리라 기대하는 것은 미련한 짓이다.  이 책에서 작가는 독자의 관심을 유도하고, 주인공의 의식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동참하도록 파격을 선택했다.  도덕적 관념의 틀 안에서는 자유로운 의식의 흐름이 통제되거나 방해를 받는다.  작가는 이것을 우려했다.  이 글을 쓴 작가도 어쩌면 알몸으로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제 2부는 주인공 미하엘이 한나와 헤어져 대학에 진학하고, 법학을 전공하던 미하엘이 세미나 때문에 법정에서 한나와 재회하는 내용이다.

나치 수용소의 감시원으로 근무했던 한나의 과거가 밝혀지며, 미하엘은 존재와 관념, 과거와 현실이 이분법적으로 양립될 수 없음을 희미하게 의식한다.

문맹이라는 치명적 약점을 지닌 한나는 오랫 동안 자신을 감추며 살았던 과거와 법정에 서있는 현실에서 우리 인간이 과거로부터 독립될 수 없는 한계적 유형임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문맹은 작가에게 있어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는 필수적인 요소였다.  자신을 방어할 수도, 약점을 드러낼 수도 없었던 한나의 재판 과정을 주인공은 이렇게 느끼고 있다.

  그녀는 자신의 이익을 좇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과 자신의 정의를 위해서 싸운 것이다.  자신을 늘 위장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완전히 솔직해질 수 없었다.  그리고 완전히 자신을 드러내 보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은 안타까운 진실이요 안타까운 정의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녀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싸움이 그녀의 싸움이었다.(P.144)

 

제 3부는 종신형을 받은 한나와 그녀와 함께 했던 과거에서 자유롭지 못한 미하엘의 이야기이다.

  손가락질은 수치심의 수동적인 고통을 에너지와 행동과 공격심리로 전환시켜주었다.  그리고 죄를 저지른 우리 부모들과의 대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었다.(P.181)고 고백하는 미하엘.

한나를 배신한 자신의 과거와 한나를 향해 손가락질 함으로써 자신의 죄의식에서 벗어나려는 미하엘의 노력은 어쩌면 과거와 현재를 독립적으로 갈라놓으려는 부질없는 짓이었다.  게르투르트와 결혼한 미하엘은 딸까지 낳고서 결국 이혼한다.

대학시절 세미나를 주관했던 교수의 장례식에 참석하며 미하엘은 늦어서는 안될 과거와의 약속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한나가 수감된 지 8년이 지난 시점부터, 미하엘은 한나와 사랑을 나누며 했던 것처럼 책을 읽고 녹음하여 그녀에게 보낸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과 현실의 삶에서 어느 것도 놓고 싶지 않았던 미하엘은 교도소로 보내는 그의 테이프에 과거를 묶어두려 한다.  그 끈을 놓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한나는 석방일에 자살한다.  한나 자신도 모아 놓은 돈을 남겨 놓음으로써 자신의 과거를 현실에 밀어넣고 있다.  주인공이 과거를 간직하려 글로 옮기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