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쿠니 가오리의 저서를 모두 검색하여 위시리스트에 넣어두던 중 발견한(?) 책.
이 책의 작은 소설 중에 반짝반짝 빛나는의 주인공 쇼코와 무츠키와 곤의 10년 뒤 이야기가 들어있다고 하여
내게 엄청난 흥미를 끌었던 책이다.
본시 북카트에 책을 넣었다 뺐다 하며 이번엔 무슨 책을 사야하나 고민하기를 그치지 않던 나였지만,
이 책만은 내 북카트에 얌전히 담겨 있었다.

에쿠니 가오리의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20년정도 작가생활을 해 오고 있는 그녀가 
여러 소설잡지(?) 같은 책에 실은 여러 이야기들.

짧은, 정말 겨우 한장이 조금 넘는 이야기도 있는가 하면,
이건 정말이지 장편소설같단말야,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이야기도 있었다.
짧은 소설도 긴 소설도 모두 에쿠니 가오리를 닮아 있었고, 모두 쓸쓸한, 그렇지만 예쁜 이야기들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재난의 전말.
에쿠니 가오리가 새로 시도한 장르라고 했는데,
정말 에쿠니 가오리가 써오던 외로운 사랑과는 달랐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 여자는, 오로지 자기만을 사랑했다.
물론 키우던 고양이도 사랑했고, 남자친구도 사랑했지만.
깨끗하던 그녀의 고양이 위스키가 용변을 보기 위해 밖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벼룩을 옮아 오고,
하룻밤새 한쪽 다리에 벼룩이 아흔한군데를 물어 퉁퉁 부은 다리를 보며,
울긋불긋 보기 흉측한 벼룩에 물린 흉터들을 보며,
사실 자신이 사랑하던건, 고양이 위스키도 아닌, 끈질긴 구애를 하는 남자친구도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인생이라는거 생각하기 나름이지만, 생각대로 살아지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여자도 있었고,
푸르고 붉은 노을이 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우수에 젖어드는 여자도 있었고,
모든 주인공들이 다 에쿠니 가오리를 닮아 있었다.
난 에쿠니 가오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그래도 이 책에 나오는 사람 모두가 에쿠니 가오리를 닮아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읽었다.
작년엔 경제경영이나 역사를 다룬 책들에 빠져 있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자기계발 서적도 찾아 읽었고.
그런 책들, 딱히 일정수입이 없는 내게 경제경영 서적은 그저 사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게 바뀌지 않는 나를 생각하니 자기계발 서적도 내겐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고.
역사서는, 부끄럽지만 금세 덮어버렸던 것 같다.
종종 읽기는 하지만, 지금도.

제작년엔 에쿠니 가오리에 푹 빠져 있었다.
읽었던 책을 또 읽고, 또 읽고, 또 읽고....
에쿠니 가오리의 책을 위시리스트에 넣어두던 심정이,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가 그리웠던 것 같다.
그녀의 부드러운 문체가, 이야기 속 주인공들의 나긋나긋한 대화들이,
책 속 도시의 풍경이, 당당하지만 쓸쓸하고 외로운 사랑 이야기들이......

에쿠니 가오리씨. 죽지 말고 나를 위해 글을 써 주세요. 당신의 책을 기다린다구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