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의 늪에 빠져 버린 소설 - 바이슬 시티 _ 스토리매니악

우리나라는 문학이 그리 크게 사랑 받지 못하는 나라다. 문학 안에서도 장르문학에 대한 천대는 두 말 하면 입 아프다. 근래에는 그나마 인식도 좋아지고 찾는 사람도 많아져, 점차 다양한 우리 작가의 장르문학을 접할 수 있어 즐겁기도 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외국의 장르문학과 경쟁하기에는 그 탄탄함에서 아쉬운 부분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의 장르문학을 접하는 데 적극적이지 못하고, 그 시간 텀도 길다는 것을 고백한다.

 

그러던 차에 그 줄거리와 소재로 눈에 띈 책이 바로 이 소설 <바이슬 시티>다. 가상 도시에 벌어지는 정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로, 작가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끌어가는 맛이 어떨지 궁금했다.

 

이야기는 미국 본토와 철저히 차단된 채 운영되는 바이슬 시티를 배경으로 한다. 지배자에 의해 언론, 교육, 경찰, 조직 등의 모든 것이 통제되는 도시, 그 안에서 개혁을 꿈꾸는 이들이 뭉쳐 새로운 정의에 대한 도전을 한다. 진실을 가리고 있는 검은 장막에 속아 사는 시민들에게 진정한 도시의 면모를 알리고, 진정한 개혁을 이루기 위해 분투하는 내용이 전체적인 줄거리다.

 

한마디로, 지독히 실망스런 소설이다. 이야기로서의 완성도도 떨어지고,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맛들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이야기를 만들어 가기에 급급한 전개와 공감 되지 않는 정의에 대한 주제의식은 답답했다.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소재들은 풍성했지만, 정작 그것들을 엮어내는 솜씨는 부족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우선 언급하고 싶은 것은, 독자가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너무 없다는 면을 짚고 싶다. 소설은 작가가 이야기를 끌어가지만, 그 과정에서 독자의 상상력이 더해져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는 풍성해지고, 재미는 배가 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 부분을 상당히 막아 놓고 있다. 지나친 설명이 너무 많다. 왜, 주인공들이 이런 행동을 하고,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는지를, 작가가 대놓고 알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여명의 눈동자'를 집필한 작가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다. 그 작품은 사랑을 받았지만, 너무 많은 대사로 응축된 이야기를 표현하지 못했다는 불만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소설에서 내가 느낀 바도 비슷하다. 지나친 설명으로 상상력의 여백을 빼앗고, 이야기 내에 내가 참여할 자리를 없애 버렸다. 나는 단지 흘러가는 문장을 읽어만 나갈 뿐, 소설과 어울리지 못했다.

 

또, 이 소설에서는 소설에서 가장 중요시 해야 하는 부분을 상당히 간과하고 있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하얀 전쟁> 등을 쓴 작가 안정효는 자신의 저서 <글쓰기 만보>에서 이렇게 말했다. <적어도 제대로 구색을 갖춘 문학작품이라고 하면, 거짓말이 아닌 거짓말을 해야 한다. … 서투른 거짓말은 바람직한 글쓰기가 아니다. 진실을 얘기할 때는 빈틈이 어느 정도는 용납되지만, 거짓말은 완벽해야 한다. 서투른 거짓말로는 소설 한 편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 나는 소설에서 마지막 거짓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 스무 마디 백 마디의 진실을 열심히 얘기한다.>. 소설은 허구지만, 진짜 보다 더 진짜 같은 허구여야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은 진짜 같은 허구 창조에 실패했다. 가짜 같은 가짜를 이야기하고, 이를 이어가기 위한 작위적인 설정이 더해지고 있다. 현재의 미국에서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바이슬 시티라는 존재의 허구, 그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는 캐릭터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상식 자체에 공감이 안 가는 허구, 그토록 완벽한 도시를 침입하는데 그리고 허물어 뜨리는데 있어 제시되는 방법들의 허구, 그 무엇 하나도 진짜 같지가 않다. 스릴러 소설로서 재미를 줄 수 있는 구성의 짜임을 논하기 이전에, 허구를 위한 허구의 존재들은 작가가 이야기의 설정에 쓰인 재료들을 얼마만큼 알고 있나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작가가 소화할 수 있는 설정이 아니었다. 적은 나이로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또는 정확히 알지 못하는 사실들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불충분했다. 다루기에는 너무 큰 배경과 너무 많은 캐릭터와 너무 버거운 설정들이었다. 좀 더 자신의 깜냥에 맞는 시야에 대한 이야기로 말하고자 하는 주제를 풀어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보는 이 소설은 자신이 읽었던 다양한 내용들을 또 다른 이야기로 엮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또, 책소개를 보면 원고 1300여 쪽을 두 달 만에 써내려 간..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이는 결코 자랑할 거리는 아니라고 본다. 물론, 충분히 그렇게 써낼 수 있다.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허나, 날고 긴다는 기성작가들도 하루에 A4 용지 한쪽을 써내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단행본으로 5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소설을 두 달 만에 써냈다는 것은, 그만큼 이야기에 등장하는 재료들에 대한 깊은 이해 부족과, 이야기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었다는 반증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부정적인 내용을 너무 장황하게 써서 미안한 감이 있지만, 이 또한 우리 작가의 우리 소설에 대한 애정으로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소설로서는 서툰 감이 너무 많지만, 적은 나이에도 이야기를 엮어 내고 글로써 표현해 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도 분명히 말하고 싶다. 이야기가 인쇄 되어 상품으로 나온 이상, 독자를 만족 시켜야 하는 책임이 분명히 있다. 그 부분에 대한 깊은 고민을 통해 한층 더 발전한 작품을 써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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