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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에 숨은 진실을 만나는 쾌감을 느끼다 - 왕복서간 _ 스토리매니악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느꼈던 충격은 잊지 못한다. 그 절절한 내용과 충격적인 결말도 인상적이었지만, 무엇보다 편지의 내용만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는 점이 그랬다. 서간체로 쓴 소설을 읽어 보지 못했던 터라 상당히 놀랐었다. 세상에 이렇게도 소설이 되는구나 싶었다.

요즘은 인터뷰 형식으로만 된 소설이나 서술 시점에 혼란을 주는 소설 등을 다양하게 읽지만, 여전히 편지 형식으로 된 소설은 묘한 감정을 동반한다. 아마도 '젋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받은 영향이 크지 싶다. 추리소설에서는 처음이었다. 다른 장르도 아니고 추리소설인데, 편지 형식으로 잘 표현이 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물론 괜한 걱정이었다.

<왕복서간>은 편지 형식으로만 이야기를 엮은 미스터리 소설이다. 독립적인 중편의 이야기가 세 편 이어진다. 행방불명 된 고교 친구에 얽힌 진실을 더듬어 가는 <십 년 뒤의 졸업문집>, 정년퇴직 한 선생님이 부탁한 여섯 제자의 안부를 확인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이십 년 뒤의 숙제>, 연인이 된 중학교 동창 남녀의 비밀에 접근해 가는 <십 오 년 뒤의 보충수업>의 세 편이다.

지금의 우리는 이메일이 일상화 된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편지지에 꾹꾹 눌러 쓴 손 편지를 주고 받았었다. 손 편지와 이메일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느껴지는 따뜻함의 정도가 틀린다는 점 아닐까 싶다. 쉽게 보낼 수 있는 만큼 감정이 덜 실린 이메일에 비해 한 자 한 자 마음을 담아 가며 썼던 손 편지, 확실히 감정의 울림은 손 편지가 더 하다. 그런 감정의 울림이 이야기 세 편에 잘 녹아 있다.

일반적인 형식으로 소설을 썼을 때를 상상해 보면, 지금의 편지 형식 소설과는 그 울림이 틀리지 않을까 싶다. 편지와 답장 형식으로 캐릭터의 마음이 옮겨 다니고, 그 감정을 되받아 이야기가 진행 된다. 기다림의 시간 속에 감정은 더해지고, 그 더해지는 감정만큼 미스터리가 쌓인다.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편지가 오가는 횟수만큼 궁금증은 더해간다. 감정이 고조되고 그 진실의 꼬리를 잡았을 즈음에는 이미 결말이다. 그 결말은 반전과 함께 찾아오고, 그 반전이 주는 여운은 다시 감정의 울림으로 되돌아 간다.

이 <왕복서간>을 평하는 다양한 말이 있겠지만, 나는 이 부분을 가장 큰 매력으로 꼽고 싶다. 오가는 편지를 통해 느껴지는 감정의 교류와 그 과정에서 고조되는 미스터리와 반전의 묘미 말이다.

그 울림과 미스터리를 절정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역시 편지가 주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일반적인 시점으로 묘사하는 형식이 아니기에, 편지와 편지 사이에 시간의 틈이 생긴다. 그 시간의 틈은 감정을 고조 시키고 미스터리를 심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요즘의 추리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확 몰아치는 맛은 없지만, 툭툭 끊어지며 시간과 공간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다. 그 틈으로 자칫 늘어지는 맛이 생길 법도 한데,저자는 리드미컬하게 그 틈을 조정하고 있다. 때문에 읽어 보면 알겠지만, 리듬감이 참 좋다. 더구나 중편의 분량이라 한 번에 죽 읽어내기도 적당하다.

이야기 자체만 놓고 보면 매력적인 요소는 더 두드러진다.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사람마다 보는 각도가 다르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런 점을 최대한 이용하고 있는 소설들이다. 감추고 싶은 과거를 이야기로 드러내고, 그 과거의 기억들을 서로 다르게 바라보는 캐릭터들을 보여 준다. 그 교차되는 시각들을 통해 주인공들은 고백하고 용서하고 화해하고 이해한다. 시각 차에서 오는 사각, 그 사각의 비밀을 걷어내고 캐릭터들이 진실을 마주 보았을 때를 관전하는 쾌감이 있는 소설이다.

흔히 미스터리 소설에 기대하는 대단한 반전이나, 미칠 듯한 속도감이나, 혀를 내두르는 트릭 등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어찌 보면 캐릭터들도 밍숭밍숭하고, 미스터리적인 요소들도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잣대로는 측정할 수 없는 다른 매력이 분명 존재하는 소설이다. 색다른 느낌의 미스터리 소설을 맛보고 싶다면, 이 소설을 적극 추천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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