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밀한 분위기 서늘한 캐릭터가 드러내는 비열함에 대하여 - 얼굴에 흩날리는 비 _ 스토리매니악

일본 여성 하드보일드의 독보적인 작가 '기리노 나쓰오'의 데뷔작이자, '무라노 미로'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일본 하드보일드 문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 작품은, 문학사적 의미와 함께 미로 시리즈의 첫 작품이란 점 때문에 기대가 컸다. 국내에서는 어쩌다 미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부터 출간되었었는데, 이 작품부터 읽고 읽으려고 시리즈 완결작 '다크'를 남겨 두기도 했었다.

 

미로 시리즈의 시작은, <미로>의 친구 <요코>가 사라지면서 시작된다. 사귀던 남자의 돈 1억엔을 들고 사라진 그녀 때문에, 친구라는 이유로 그녀를 찾는데 나서게 된다. 1주일의 시간 안에 요코를 찾아야 하는 미로는, 요코의 남자친구인 <나루세>와 함께 돈과 요코의 행방을 쫓는다.요코의 행방을 쫓는 과정에서 그녀가 취재하고 있던 내용들과 더불어 새로운 살인을 맞닥뜨리면서 이야기는 전개 된다.

 

확실히 미스터리적인 요소 보다는 행동을 중심으로 하는 하드보일드스런 재미가 두드러진다. 완력이 약한 여자가, 그것도 탐정도 뭣도 아닌 여자가 본격적으로 친구를 찾아 나서며 벌어지는 과정의 이야기들은 촘촘한 짜임새가 있다. 이 작품 후에 나온 출간작인 <천사에게 버림 받은 밤>이나 <로즈 가든>에 비해 미로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배경적인 면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도 한층 어둡고 퇴폐스럽기까지 하다. 예전 홍콩 영화에서 환락가의 거리를 비틀거리며 걷는 주인공을 따라가는 느낌 같다.

 

중요한 건 이상하다고 느끼는 감성과 왜인가를 생각할 줄 아는 상상력이야.

요코를 찾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인물들과 소재적인 면도 어두운 분위기에 무게를 더해 준다. 야쿠자와 그 조직과 같이 일하는 폭력단원, 사기꾼, 동성애자와 SM 플레이어들, 시체 사진 애호가, 여장남자, 약물 중독자, 네오나치, 르포라이터까지, 어둠에 둘러싸인 인물들과 엮여 드러나는 이야기의 줄기가 거친 느낌을 자아낸다.

 

이러한 인물들은 하나 같이 비열하다. 야쿠자나 이상성욕자, 결국엔 범인으로 밝혀지는 인물까지, 사람이라는 거죽 안에 감추어진 비열한 본성을 드러낸다. 작가는 이러한 본성을 날카롭게 파헤쳐 보여 준다. 결말에서 드러나는 범인의 동기에서 이 부분은 두드러져 보이는데, 어찌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인간이 지닌 가장 밑바닥의 비열함을 보게 한다.

 

시리즈의 다른 작품에 비해서, 그 분위기와 캐릭터의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다. 낮게 깔린 어둠을 홀로 휘젓고 다니는 미로라는 캐릭터가 다른 작품에 비한다면 상당히 매력적이다. 여전히 미로라는 캐릭터가 가진 답답한 모습들도 있긴 하지만, 남편과의 사별이 남긴 상처를 가진 미로가 인간적으로 부딪는 모습은 배경적인 어둠과 잘 어우러져 보인다.

 

잘 잡힌 균형 속에서 몰입해가며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시원한 응징이나, 치밀한 미스터리의 풀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만의 농밀한 분위기와 서늘한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이야기다.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꼭 보아야 할 시리즈, 그리고 그 시리즈의 첫 작품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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