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신뢰도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는 과연 '언론이 민주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이다. 언론에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얼마나 제대로 수행하느냐에 따라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매체가 되느냐는 것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대체적으로 미디어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철학적으로 상이한 두 종류의 접근법이 있다. 우선 라스웰(Harold Lasswell)과 리프만(Walter Lippmann)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 엘리트가 주도하는 테크노크라시적인 접근이 있고, 그 반면에 듀이(John Dewey)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상적인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견해가 있다.

이 두 가지 상이한 접근은 근본적으로 대중이 진실과 거짓을 구별할 능력이 과연 있느냐 없느냐라는 견해의 차이인데 이러한 차이는 결국 언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차이로 이어진다. 라스웰의 선전이론(Propaganda Theory)과 비슷한 엘리트 주도적 관점을 견지한 리프만은 일반 대중의 진위판단 능력에 회의적인 입장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우리 머리 속의 스테레오타입(stereotype)의 이미지는 불가분 괴리가 생기게 마련인데, 사회적 책임감이 투철한 기자라 할지라도 이러한 원천적인 괴리에서 벗어나기는 힘들고, 게다가 보통사람들이 온전한 이해를 하도록 도움을 주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리프만은 고전적 의미의 민주주의 이론과는 다른 엘리트 중심적 접근으로, 즉 선의(benevolent)의 소수에 의해서 정보가 수집되고 일반 대중이 소화할 수 있는 정도로 정보가 배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리프만은 준정부적 기관이 설립되어 이 기관이 매스 미디어를 통해 어떠한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고 또 전달되지 않아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양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 라스웰과 리프만의 이론은 지금까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이들의 커뮤니케이션 모델과는 상이한 듀이의 이론도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민주적 의사결정을 위한 중요한 공적 정보가 아직도 완전하게 국민에게 공개되어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디지털시대의 정보의 홍수 속에서 소수에 의한 정보의 통제와 선택적 배포란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언론의 사회적 역할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듀이는 근본적으로 전문가 집단이 아무리 선의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일반 대중의 이익을 완전히 대변할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비판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정도의 교육을 받은 일반 대중이라면 자체적으로 진위를 가릴 수 있다는 확신 하에 듀이는 "언론의 역할은 공공의 이익이 걸려 있는 사회문제에 일반 대중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to interest the public in the public interest) 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라스웰과 리프만이 미디어를 하나의 외부적 객체로 본 반면, 듀이는 "미디어가 한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복잡한 관계구조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사회의 공적인 공동 문제를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국민이 활발하게 토론할 수 있는 포럼(forum)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뉴스미디어는 이미 발생한 사실에 대한 토막소식을 전하는 게시판으로서가 아니라 일반 대중이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교육하며,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에 관한 진지한 토론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다.

리프만과 듀이의 언론관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기보다는 이들이 주장한 두 가지 모델을 조화롭게 받아들일 때, 민주사회의 성숙을 위한 언론의 참다운 역할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흔히 기자를 일컬어 '사회의 목탁'이라고 했듯이 우리나라 기자의 지사(志士)형 이미지는 어느 정도 리프만의 모델에 가깝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언론에 대한 정치적 직접통제가 급격히 감소되어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되었고, 새로운 신문이 기존 신문시장에 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뉴스미디어에 대한 수용자의 신뢰성이 전반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것은 현재 우리 언론의 현실이 리프만이나 듀이의 이론과 매우 동떨어져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 언론의 현실을 진단할 때 리프만이나 듀이의 언론관이 필요한 이유는 언론의 자유에 초점을 두느냐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일반 대중의 뉴스미디어에 대한 신뢰의 차이가 생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성급한 일반화라는 지적을 받을 수 있겠지만 리프만식의 언론모델을 받아들여 전국민을 전쟁으로 이끌었던 과거를 반성한 후, 듀이식 모델에 중점을 두어 언론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해 온 독일과 일본에서는 일반 대중의 뉴스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높은 반면, 고전적 자유주의(classical liberalism)의 패러다임을 따라 언론의 외압으로부터의 자유에 무게를 둔 미국과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상대적으로 낮다고 할 수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공공성 또는 공개성을 의미하는 'Offentlichkeit'라는 개념을 통해서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기관이 여론형성과 여론전달을 하는 구조적 특성에 의거하여 언론의 책임을 강조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이 개념을 도입하여 제5공화국의 언론기본법을 제정했지만, 현재 독일은 언론의 공공성을 강조해 온 결과, 전반적으로 뉴스미디어에 대한 신뢰가 높으며, 특히 신문에 대한 신뢰가 다른 매체보다 높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독일에서 신문에 대한 신뢰는 전체의 41%로, 공영방송의 31%, 공영 라디오의 11%, 민영 텔레비전 방송의 7%를 크게 앞서고 있다.

독일과 마찬가지로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는 동안에 국민을 호도한 것에 대한 반성을 거친 일본언론의 경우(물론 식민 지배에 대한 부분은 제외하고) 신문의 신뢰가 전반적으로 높다. 신문사의 일부 간부가 관련된 리쿠르트 사건과 구독료의 인상 등의 사건이 일어났을 때인 1989년에는 58%까지 신뢰성이 낮아졌지만, 이후 72%까지 올라갔고, 1997년 65%로 잠시 떨어졌지만 1999년 초기의 독자조사에서는 신뢰가 74%로 향상되었다. 더군다나 『요미우리신문』이 1999년 10월의 신문주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체적으로 신문의 보도를 신뢰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높이' 또는 '대개' 신뢰한다고 답한 사람이 87%에 달했다. 또한 한신(阪神) 대지진 2개월 후 신문협회연구소가 재해주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속보성에서는 신문이 방송보다 못하지만, '신뢰하는 미디어'를 묻는 복수 응답에 대해 신문은 85.3%, 공영방송인 NHK는 58%, 민영 텔레비전 방송은 31.7%를 차지했다.

미국의 경우 1950년 텔레비전이 보급된 이후 신문에 대한 신뢰는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1950년대 후반과 1960년대 초반에 걸친 민권운동, 1960년대 후반의 반전운동, 그리고 1970년대 초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한 닉슨 대통령의 하야 등을 거치면서도 독자의 신뢰 하락에 무관심하던 미국 신문업계는 1985년에 이르러서야 미국신문편집인협회(American Society of Newspaper Editors : ASNE)의 주도로 신뢰회복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이래 신문의 신뢰제고에 대한 연구와 조사를 꾸준히 해왔다.

일례로 미국신문편집인협회는 1999년에 지난 3년 간의 조사를 종합하여 '우리의 신뢰도를 검진한다(Examining Our Credibility)'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자와 기자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 신뢰를 쌓는다는 생각에 AP통신사경영편집인들(Associated Press Managing Editors)은 전국적으로 각 도시에서 신뢰도 제고를 위한 원탁회의를 그 지역 주민과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신뢰제고를 위한 회의는 데드라인이 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 한다. 이 뿐만 아니라 이들은 윤리ㆍ신뢰위원회를 구성해서 미국신문편집인협회, 프리덤 포럼(Freedom Forum), 그리고 전국옴버즈맨협회(National Organization of Ombudsmen) 등의 다른 언론 유관기관들과 독자와의 연대를 통한 신뢰제고에 꾸준히 힘을 기울이고 있다.

더욱 주목할 만한 미국 신문업계의 변화는 공공저널리즘(Civic/Public Journalism)의 확산이다. 리프만식의 언론모델과는 달리 독자의 관심에 귀를 기울여 지역사회의 발달이 그 사회에 소속된 언론의 발전이라는 듀이식의 방법에 기초한 공공저널리즘이 이제 이론적 차선책의 수준을 넘어 여러 지역사회에서 시도되어 어느 정도 실효를 거두고 있다. 공론장에서 시민이 소외되는 현상이야말로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위협이라는 전제 하에 공공저널리즘은 (지역)사회의 문제해결에 그 (지역)사회의 미디어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시민의 참여를 증대시키는 것이 저널리즘의 사명이라고 보고 취재방식, 보도방식, 그리고 편집실 운영방식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러한 이론적 틀로 출발한 공공저널리즘은 퓨 센터(Pew Center)와 포인터 연구소(Poynter Institute)의 도움을 받아 프로젝트로 여섯 개의 도시에서 시도되었고, 더 나은 저널리즘과 더 나은 지역사회를 위한다는 목표를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달성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뉴스미디어의 신뢰도가 전반적으로 하락했고 특히 신문의 신뢰도가 1996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학계나 뉴스미디어업계에 의한 심층적인 신뢰도 제고방안 연구는 시도되지 않았다. 일부 언론학자나 기자들이 산발적으로 매체비평 형식의 글을 발표했지만 신뢰도 제고를 위한 체계적 방안제시로는 미흡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언론고시'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기자의 이미지는 지사형에서 매력적인 봉급생활자로 어느덧 바뀌었는데, 이러한 기자 이미지의 변화는 변화된 미디어의 환경을 시사적으로 보여준다.

'디지털 혁명' 또는 '디지털미디어'라고 일컬을 만큼 지난 수년 간의 변화는 기사의 취재와 보도뿐만 아니라 미디어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변화된 상황에 맞는 뉴스미디어의 역할에 대한 논의 또한 신뢰제고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언론이 사회의 여론을 이끌어 가고 여러 가지 사회적 영향력을 누리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공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왔느냐에 대한 엄밀한 진단은 필요하다. 또 이제는 군사정권 시절에 있었던 그런 종류의 언론 통제는 없어졌지만 '언론의 자유'에 대한 논란은 여전한 상황에서 언론의 신뢰도 문제는 이런 논란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언론의 신뢰도에 대한 논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