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시장은 무엇인가

아파트 경매든 미술품 경매든 경매시장은 원칙적으로 '2차 시장(secondary market)' 즉 '중고시장'이다. 미술작품의 경우 유통경로는 대략 이렇다. 화가의 작품은 작업실에서 나와 제일 먼저 '1차 시장(primary market)'인 화랑으로 간다. 이렇게 화랑을 통해 컬렉터들 손에 작품이 들어간다. 수년 뒤 그 작품 소장자가 작품을 팔 때 다시 화랑을 통해 내놓을 수도 있고, 개인적인 거래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지만, 경매를 통해 만천하에 공개를 하며 내놓기도 한다. 요즘 국내에서는 대형 화랑이 경매회사를 차리고, 해외에서는 대형 경매회사가 화랑을 인수하는 식으로 갈수록 1차 시장과 2차 시장의 경계가 불분명해지고 있다. 하지만 화랑이나 개인 간의 거래는 한정된 사람들에게만 작품을 살 기회가 주어지는 '닫힌 시장'인데 반해, 경매는 누구나 돈만 있으면 작품을 살 수 있는 '열린 시장'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거의 미술품만 가지고 경매를 하지만, 경매 역사가 오래된 외국 경매회사의 경우 와인, 가구, 보석, 자동차 등도 자주 경매한다. 또 이런 고가의 물건뿐 아니라 그릇, 장난감, 장식품 등도 '하우스 세일(House Sale)'이라는 이름으로 경매시장에 나온다.

국내외 주요 경매회사 현황

경매실적 기준으로 볼 때 2005년과 2006년 세계 1위의 경매회사는 크리스티(Christie's), 2위는 소더비(Sotheby's)다. 국제 미술시장 분석기관인 아트프라이스닷컴(artprice.com) 조사에 따르면 2006년 전 세계 경매 낙찰총액의 43%를 크리스티가, 33%를 소더비가 차지했다. 하지만 두 회사는 실적이 거의 차이가 없을 만큼 막상막하이기 때문에 그냥 양대 경매회사라 불린다. 소더비는 1744년에, 크리스티는 1766년에 영국에서 경매를 처음 시작했다. 고가에 낙찰된 유명 미술작품 중엔 이 두 회사에서 낙찰된 것이 대부분이다. 두 회사는 뉴욕, 런던, 홍콩, LA, 파리, 제네바 등에 경매장을 두고 있고, 100개 안팎의 나라에 연락사무소를 두고 있다. 특히 매년 봄과 가을에 하는 '인상주의와 근대미술 경매'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및 현대미술 경매'는 두 회사를 먹여 살리는 가장 중요한 메이저 경매다. 이 두 경매 외에도 미국 미술, 영국 미술, 아시아 미술, 보석 등으로 주제를 달리 해 연중 계속해서 경매를 한다. 핫시즌에는 1주일 내내 거의 매일 종일 경매를 할 정도로 분주하다. 소더비와 크리스티를 잇는 세 번째 큰 경매회사는 필립스(Phillips de Pury & Company)로 현대미술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나라의 양대 경매회사는 서울옥션과 K옥션이다. 서울옥션은 가나아트센터가 1999년에 만들었고, K옥션은 갤러리 현대, 학고재 화랑, 하나은행 등이 주요 주주로 참여해 2005년에 출발했다. 서울옥션과 K옥션은 주로 우리나라의 근현대미술품을 다룬다.
외국에서보다 국내에서 인기인 '로컬 작가'들이 경매의 중심을 이루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다. 다만 미국이나 영국 작가들은 상대적으로 국제적 인지도가 높은 것에 비해 우리나라 작가들은 국제적 인지도가 적기 때문에 우리나라 경매회사들이 좀 더 지역적으로 보일 뿐이다.

꼭 알아둘 경매 용어

위탁자(consigner)
작품을 팔려고 내놓는 사람을 '위탁자'라고 한다. 위탁을 할 땐 특별히 경매회사의 유료회원이 아니어도 된다. 하지만 작품당 출품료(우리나라의 경우 1점당 10만 원)를 내야 한다. 팔 작품이 있어야 경매가 돌아가기 때문에, 경매회사들은 고가의 좋은 작품을 가진 위탁자를 끌어오기 위해 서로 경쟁한다.

응찰자(bidder, buyer)
정식으로 응찰 등록을 하고 작품을 사기 위해 손을 드는 사람이 응찰자다. 경매에서 응찰을 하려면 연회비(우리나라의 서울옥션과 K옥션의 경우 1년에 10만 원)를 내고 유료회원으로 가입을 해야 한다.

추정가(Estimated Price)
경매 도록을 보면 작품마다 추정가 4000만~6000만 원 하는 식으로 추정가 범위가 적혀 있다. 추정가는 말 그대로 얼마에 낙찰될 것 같다는 예상 가격이다. 위탁자가 작품을 경매회사에 들고 가면 회사와 합의하에 '추정가'라는 것을 정한다. 경매회사와 위탁자 사이에 추정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작품이 경매에 나올 수 없다. 때로는 도록에 '추정가 별도 문의'라고 돼 있는 경우가 있는데, 도록을 인쇄하기 전까지 정확한 추정가를 정하지 못했을 때 이렇게 쓴다. 종전 기록을 깰만한 초고가 작품의 경우 이런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고집 센 위탁자가 억지로 추정가를 비싸게 불러 말도 안 되는 가격에 경매에 나갈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럴 땐 십중팔구 유찰된다. 무턱대고 추정가 9억 원에 나온 천경자의 초기 작품이 응찰자 한 명 없이 유찰되는 등, 블루칩 작가들 작품이 허무하게 유찰되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경매회사에서 추정가를 정할 때는 경매 당시 그 작가의 작품들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가격에 팔리는지,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오를 가능성이 있는지를 염두에 두고 정한다. 하지만 추정가는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추정'일 뿐이다. 턱 없이 높은 추정가로 나온 작품이 유찰되듯, 추정가가 아무라 낮아도 인기 있는 작품이면 몇 배 높게 낙찰되는 일이 흔하다.

내정가(Reserved Price)
위탁자가 작품을 내놓을 때 "이 가격 아래에서 파느니 차라리 안 팔고 도로 가져가겠다"라고 정한 최저한도 가격이 있다. 이게 바로 '내정가'다. 역시 위탁자와 경매회사 사이에 합의해서 정한다. 그래서 내정가 아래에서는 아무리 높게 불러도 낙찰이 안 된다.
내정가는 드러내놓고 공개하는 것은 아니어서 가끔 응찰자들을 헷갈리게 만든다. 한번은 어떤 컬렉터가 필자에게 전화를 했다. 경매에서 1500만 원에 작품을 하나 샀는데 속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었다. 너무 사고 싶었던 작품이긴 하지만 경매를 진행하는 경매사(auctioneer)가 1200만 원에 호가를 시작했는데 이 사람 말고는 아무도 응찰경쟁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경매사가 가격을 1500만 원까지 올려 부르는 바람에 얼떨결에 1500만 원에 낙찰을 했다는 얘기였다. 경쟁자가 없었으니 더 싸게 살 수도 있었는데 경매사가 괜히 값을 올리는 바람에 바가지를 쓴 것 같다고 했다. 확인해보니 이 작품은 내정가가 1500만 원이었다. 경매사는 내정가의 80% 정도에서 호가를 시작하는 자신의 방침에 따라 1200만 원에 시작을 했지만 단 한 사람밖에 응찰자가 없었고, 그래서 1500만 원까지 올려 부른 것이었다.
어차피 내정가 아래에서는 낙찰이 안되기 때문에 내정가 아래에서 응찰자가 없을 때 경매사는 아무나 임의로 가리키며 "1300만 원 나왔습니다" 하는 식으로 쇼를 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손님을 속인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어서 어떤 경매사는 응찰자가 단 한 명일 때는 그 응찰자를 향해 "한 번 더 하셔야 사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역시 별로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그래서 요즘 우리나라 경매사들은 아예 내정가에서 호가를 시작할 때가 많다.
내정가가 없는 경매도 있다. 뉴욕에서는 중저가 그림과 집안 가구, 그릇 등 잡동사니를 다 내놓는 '하우스 세일'의 경우, 내정가 없이 경매를 할 때가 있다. 위탁자들이 낙찰가에 상관없이 1달러에라도 무조건 팔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우스 세일 경매장에 가보면 가끔 진풍경이 펼쳐진다. 경매사가 의자 하나를 놓고 "400달러에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아무도 팻말을 들지 않는다. 그럼 경매사가 시작가격을 낮춘다. "300달러? 300달러 있으세요?" 그래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200달러?" "100달러?" 그제야 한 사람이 응찰표를 든다. 그럼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씩 응찰표를 든다. 사실 다른 사람들은 내정가가 낮아지기를 기다리며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부터 경쟁이 붙어봤자 아무리 올라가도 몇백 달러 수준을 넘지 못하고 낙찰이 돼 버리곤 한다.

해머프라이스(hammer price)
현장에서 경매를 진행하는 사람은 경매사다. 경매사가 낙찰되는 순간에 망치를 두드리기 때문에 낙찰가격에 '해머프라이스'라는 말이 붙었다. 현장에서 호가된 가격 그대로를 뜻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이 치러야 할 값은 여기에 수수료와 세금 등을 붙인 가격으로 해머프라이스보다 훨씬 높다. 외국의 경우 작품 낙찰가를 발표할 때 수수료를 포함해서 발표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그냥 해머프라이스로 발표한다.

수수료(buyer's premium)
가. 경매에 참여하기 전에 잊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요소 중 '1번'이 바로 수수료다. 실제 경매에 참여해 작품을 낙찰 받고 싶은 사람이라면, 계산할 때 '해머프라이스'보다 훨씬 더 내야 하는 것을 분명 기억해 두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낙찰가의 12~20%, 우리나라의 경우 낙찰가의 8~16% 정도다. 게다가 수수료에는 그 수수료의 10%인 부가세가 또 붙는다. 그래서 경매에서 응찰할 때에는 실제 호가하는 액수보다 10% 이상 더 낼 것을 머릿속으로 계산해야 한다. 예를 들어 4500만 원에 그림 한 점을 낙찰했으면 수수료로 10%인 450만 원을 붙이고, 450만 원의 10%인 45만원을 부가세로 또 붙여서 모두 4995만 원을 내야 한다. 작품을 팔 때에도 이보다는 적지만 역시 수수료를 내야 하기 때문에 실제 낙찰가격보다 적은 돈을 받는다.

개런티(guarantee)
"언론에서는 경매회사가 만날 박수근만 하냐고 비난하지만, 현실은 어쩔 수 없어요. 박수근 없는 경매는 팥소 없는 찐빵이잖아요."
경매회사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경매 때마다 고가의 박수근 작품을 끌어오기 위해 진땀을 흘린다. 언론은 '경매가 그 나물에 그 밥이다' '만날 박수근만 들고서 자기들만의 잔치를 한다'고 비판하곤 한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언론 입장에서는 막상 박수근이 없고 기록을 깰 만한 하이라이트 작품이 없는 경매는 보도하기 어렵다. 일반 대중들도 하이라이트 작품이 없는 경매에는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또 경매회사는 낙찰가격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수수료'를 먹고 살기 때문에, 경매회사 입장에서는 고가의 작품 하나를 파는 게 중저가 작품 수십 개, 수백 개를 파는 것보다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