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어들고 한참 고민했다. 재밌으려나?

결론. 땅땅! 정-말 흥미롭게 잘 읽었다! 우-와!

 

우리 나라 신분제도의 폐지는 신분 제도 그 자체를 무너뜨리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양반이 되는 방법을 택함으로써 의미없는 것으로 만드는 방식이 되었다. 100여년 사이에 양반이 차지하는 비율이 10%에서 80% 가량으로 늘어났다는 것 자체가 이를 증명하는 것이겠지.

 

'수봉'이라는 본관과 성 또한 가지지 못하고 '심정량의 노(奴) 수봉'이라고 호적에 기재되었던 한 노비가 대를 거치며 본관을 정하고 성을 갖게 되고 더불어 자식 세대로 이어지면서 평민, 후기에는 '유학'의 직역까지 가지게 된다. 나는 고작 책 한 권으로 그들의 과정을 지켜보았다지만, 노비에서 양반으로 올라가기까지 그들이 거친 시간은 백년이 훌쩍 넘는다. 비록 수봉의 가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많은 이들이 그러했지 않을까.

 

'한낱' 노비였기에 호적에 자세히 기재되어있지 않은 그의 뿌리와 주인 심정량의 뿌리를 찾으러 올라가는 과정은 다른 추리 소설이나 영화보다 훨씬 더 흥미로웠다. 때로는 중간에 소실되거나 의도적으로 누락된 기록들로 난관에 부딪히는 그 과정자체도 재미있었다. 특히, 수봉의 조상이 대대로 기록되는 과정에서 상황에 따라 때로는 '사노', 때로는 '납속통정대부' 결국엔 '학생'으로 기록되며 이미 이 세상을 떠난 사람이 수시로 그의 직위를 달리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노력이 아닌 태생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신분제도야 말로 얼마나 억울하고 비합리적인 것인가.

 

책을 읽는 내내 지금 본관과 성을 따지는 자체가 의미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3년마다 새롭게 작성하는 호적이기에 나이를 변경하거나 필요한 부분을 조금씩 바꾸어가는 것이 충분히 가능했으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조상을 따라서 내려오고 있다고 믿는 그 본관과 성은 사실은 중간의 많은 과정을 통하여 개인의 선택이나 주변 환경에 의하여 임의적으로 선택했던 것이기에.

 

한 때 내 이름을 개명 아닌 개명을 하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이름 자체는 정말로 마음에 드는데, 한글 이름에 끼워맞추어진 한자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한자만 없애는 개명 말이다.

한글 이름으로 지었는데, 굳이 왜 한자를 억지로 넣었을까하는 생각에 여쭈어보았더니

100세까지 장수하시다 돌아가신 증조 할아버지께서 내 이름을 짓는 것은 상관하지 않으셨으나 -여자 아이이므로- 한글 이름은 안 된다며, 한자를 넣어야 한다며 말씀하신 그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되었달까.

 

때로는 하나하나씩 거꾸로 되짚어 가고, 때로는 각 마을로 흩어진 후손들을 찾아 따라가기도 하고 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문장들이 쉽지는 않아 몇 번이고 다시 되짚어 읽어야 했지만 정-말로 만족스럽게 읽은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