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아닌, 책의 안부가 궁금한 책이 더러 있다. <소년이 온다>가 그 중 하나다. 그래서, 가끔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을 한다. 받는 사람은 선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너무 몰랐음을, 그 시간이 불과 하루나 열흘에 불과한 시간이 아니라 수십년의 세월로 기억에 새겨진 사람들이 있음을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 않느냐는 무언의 압력을 가하면서. <소년은 온다>가 아닌 <소년이 온다>로 표현한 것을 누군가는 받아서 대답해야 할 것 같아서.

 

    최근 구입한 책이 31쇄이니, 이 책이 100쇄쯤 인쇄되면 그때의 광주 사람들에게 말보다 시선으로 답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울지 않을 것 같아도 막상 이 책 어느 중간쯤에는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눈물이 쏟아져 내리는 순간이 있다. 그게 에필로그를 읽으며 '사실이구나'라고 인지하는 순간이든, 너무나 어린 5명의 그들 - 동수, 은숙, 선주, 정대와 정미 -의 이야기 어느 한 순간이든, 다섯명의 주변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이든.

 

    이 책이 출판되었을 즈음에 전국민이 눈으로 보고 들어야 했던 아이들이 있다. 이해관계가 전혀 없어도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아이들이었기에 이름도 아닌 번호로 불린 시신을 확인하는 가족들의 모습과 그것마저도 감사하다고 생각해야 하는 또 다른 유족들을 보면서 멍~한 순간이 있었다.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것이기에...그래서, 이 책에 등장하는 두 소년의 이야기가 화자와 청자를 구분할 수 있는 시점부터 놀랍도록 잔인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피해자는 더욱 아프고 쓰라린 존재로 광주의 5월의 봄이 각인되어 있다. 이미 책은 다 쓰여져 독자손에 잡히기만을 기다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근 40여 년이 다 되는데도 노래를 부르는 형식을 놓고 제창이니 합창이니 논의도 아닌 논란을 보고 있으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기록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이 지점에 문학이 등장한다. 문학적으로 한강의 글은 모든 잔인함과 슬픔을 되새기고 되새기는 것을 수년 혹은 수십년 반복해서 표정으로는 웃을 수 있으면서 말로 그 아픔을 꺼내는 것이 자연스럽다. 특히, 광주에서 아직 중학생이 채 되지 않은 나이에 80년을 보냈거나 기억이 있는 작가들의 글은 '이래서 글의 깊이가 다르구나!' 생각을 하게 한다. 동시대 다른 사람들이 보고 들을 수 없던 것을 보고 들었고, 그래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음을 보여주기에.

 

    이 책은 장이 바뀔 때 잠깐씩 멈칫한다. 누구의 이야기인지 잠시 생각해야 하기때문에. 동일한 공간과 시간에서 말하는 사람에 따라 이야기는 다각도로 보인다. 특히, 죽음과 삶, 죽음과 같은 삶에 관해서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사회가 놓친 '무엇'을 찾아내야 할 것 같은 숙제를 받은 느낌을 준다.

 

    단순히 계엄군이 시민을 죽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의 선악을 구분해서 철학적으로 답을 찾는 것도 아니다. 시민의 범주를 구체화해서 교련복과 중간고사, 문제집과 외가라는 단어가 익숙한 중학교 3학년 동호처럼 너무 어린 아이들 혹은 청년들의 삶에 시선을 둔다. 그들이 성장한다면, 혹은 어린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가족들의 삶은 어떠했을지 생각할 공간을 마련하면서. 그 시간에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 단순하지만 본능이자 의무인 것처럼 보인다. "패배할 것을 알면서 왜 남았느냐는 질문에, 살아남은 증언자들은 모두 비슷하게 대답했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습니다(p.212-213)."

 

    당시의 시대상황과 그 며칠의 시간을 함께 보영주는데 몇 장 넘기지도 않아서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결린다. 마치 톨스토이의 장편의 무거움을 몇 장에 다 던져놓듯. "경련하던 남자의 발이 잠잠해질 때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곤봉을 내리쳤다. 곁에서 쉬지 않고 비명을 지르다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어떻게 되었는지 너는 모른다(p.25)." 동시에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국가와 정부가 달랐다는 지점까지 명확하게 드러난다.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p.17)."

 

 

    그리고, 마지막 부분의 말이 재생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에. 다 쓴 음료수 병에 네가 꽂은 양초 불꽃들이(p.102-103)."

 

 

    시간이 많이 흘러 광주도 예전의 광주모습을 찾기 어렵고 개발과 보존 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나지만 변하지 않아야 하는 한 가지는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고, 누군가의 남편이고 아내였던 사람들이 그 때 그렇게 착검한 총 앞에서도 바로 서야 했던 이유, 스러진 그들을 시간이 지났다고 망각해서는 안 되야 하는 이유가 책 안에 가득하다. 최소한 대의를 찾을 수 없는 이 시대에 그들에게는 그것이 있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