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섬 게임. 진부하면서도 삶의 진리같은 말이 된지 오래다. 그들의 생존연몰의 시간차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폐 속 인물이라 친근하고 가끔은 그들의 생각이 이것이었는지 저것이었는지 혼란해서 가끔씩 들여다봐야 하는 성리할자들, 퇴계와 율곡의 생각의 흐름을 짚어본다.

 

    같은 목적지를 같은 길로 간다. 그런데 방법이 다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며 걸어갈 것인가, 발앞에 돌은 없는지 저 만치서 나쁜 사람이 오지 않는지 경계하면서 걸어갈 것인가. 퇴계가 이상에 가중치를 두었다면, 율곡은 그것보다 현실을 보려고 했다. 이 책이 재미있는 부분은 이런 편가르기 생각의 흐름이 아니라 이들의 생각이 합쳐졌다 등을졌다가 다시 풀어지는 모양새가 옛 아낙네들이 바느질을 하기 위한 실꼬기부터 천 위에 놓는 바느질의 기법까지 섬세하게 닮아있다.

 

    내가 처음 퇴계선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니, 선생은 오래도록 묵묵하게 계시다가 "마음가짐에 있어서는 속이지 않는 것이 귀하고, 조정에 나가는 일에 있어서는 일 벌리기 좋아함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퇴계가 율곡에게 준 경구 中;p.45).

 

    둘의 편지를 저자의 시각에서 한 번 걸러내 추려내어서 읽기에 따라서는 두 학자 각각의 논점을 완벽하게 못 볼 수도 있다. 그냥 한자어가 많이 나열되어 있고 유면한 두 학자의 안부편지와 사상에 대한 교류 정도로 보일 수도. 그런데, 읽는 어느 한 순간에 경구 하나씩 툭! 툭! 튀어오른다. 연어가 물 위로 솟구치듯. 시대가 변해도 변하지 않는 가치들이 있다면,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