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작가 혹은 외국작가의 작품에 빠져들면, 어쩐지 국내작가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느끼게 된다.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고, 순수예술에 대한 경계도 없을진대, 이상하게도 그렇다. 국내작가의 작품도 다 못 읽는데, 고전작품 이외에 좋아해도 되는 것일까? 너무 가볍게 접근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미안함과 꺼려짐...1Q84가 출간된 지 얼마나 되었는데, 최근에 읽었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를 ’상실의 시대’ 그 이상으로 보게 되었다. 글에 대해 솔직하구나! 담백하구나!

      특히, 이 책은 순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단편들이어서 그 느낌이 ’1Q84’와는 다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읽고 난 후에 드는 느낌은 백김치와 흰 쌀밥을 같이 먹는다는 느낌. 그런데, 그 무미건조함을 해소하기 위해 흰 쌀밥에는 초록빛 완두총 7-8알 쯤 올려놓고, 백김치에는 빨간 고추를 약간 도톰하게 썰어 3-5가닥 올려놓은 느낌! 

      솔직히 단편소설을 읽은 지 오래되어 처음엔 정말 어색했다. ’무슨 얘기지?’, ’이 글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냥 읽게 된다. 아무 생각없이. 이게 좋은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판단할 수 없지만, 최소한 짧은 글에서 어떤 의미와 생각을 찾기보다 동화되게 된다. 그런 면에서 O.Henry가 주는 느낌과는 약간 다르다. 서정적이고 위트가 녹아있어 감정을 들었다 놓았다 하는 O.Henry와는 달리 무라카미 하루키의 글은 담백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고 동감하게 된다. 

     특히 <치즈 케이크 같은 모양을 한 나의 가난>은 "우리는 젊고, 갓 결혼했고, 햇볕은 공짜였던 삼각형의 가늘고 긴 땅"에서 살던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것. 그 곳에는 그리움, 추억을 강요하는 말이 없어도 행복한 느낌을 넘치게 한다. <스파게티의 해에>도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다른 사람에게는 추억이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1971년 무수하게 삶아낸 스파게티는 '고독'이었기에. <도서관 기담>은 이 책에서 가장 긴, 중편소설 쯤에 해당한다. 약간은 소름이 끼치면서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표현덕분에 그 기괴함은 누그러진다. "어둠 속은 아주 깊다. 마치 초승달의 어둠 같다(p.253)." 초승달의 어둠. 어떤 의미일까? 그래도 그믐달은 아니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