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교 정도의 아이들이 읽기 좋은 세계사 이야기다. 엄마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세계사로 문장의 어조도 대화하듯, 의복양식이나 복잡한 복식사 이야기 대신 10개의 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한다. 청바지, 비단, 벨벳, 검은 옷, 트렌치코트, 마녀의 옷, 바틱, 스타킹, 비키니, 넥타이와 양복. 짧은 단어만 봐도 어떤 이야기가 있을 지 가늠할 수도 있다. 맞다. 그 얘기가 잔잔하고도 재미있게 풀어졌다.

    청바지를 통해 캘리포니아의 금광찾기광풍을, 비단으로 실크로드와 동방견문록을, 벨벳으로 체코 프라하의 봄을, 검은 옷으로 스페인의 무적함대와 영국 공화정의 크롬웰을, 트렌치코트를 통해 1차대전을 그린다.

    앞의 다섯 단어만 보면 이것으로 세계사라고 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단어가 인물과 연결되고, 그 인물의 시대와 사건으로 확대되면서 역사의 한 부분이 손에 잡힌다. 특히, 벨벳을 앤디워홀-벨벳 언더그라운드로 시작해서 사회주의 혁명과 체코인들의 민주화 정신까지 마무리한 점은 단순히 프라하를 여행하기 좋은 도시 이상의 가치로 보여준다. 비단과 관련해서 로마시대의 엄청난 비단소비실태를 이야기하거나 트렌치코트의 1차대전의 세네갈 군인들의 모습을 조명한 것 등 신선한 부분이 많다.

    섬유이야기가 등장하는 후반부는 인도네시아, 미국, 나일론의 과거와 현재가치, 남성의복양식에서 영국의 에드워드 8세와 조지 6세의 일화을 소개한다. 인도네시아의 바직은 네덜란드 식민지배 이야기로 연결되어 세계지리같은 느낌도 든다. 스페인의 식민지에서 독립한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에서 플랜테이션 농업을 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어전쟁을 일으키는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교과서에 나오기도 하고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정도로 지나가는 이야기들이 함께 있다.

    그런가 하면, 아이들에게 당부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잔다르크의 마녀사냥을 통해 "지금은 마녀사냥이 사라졌을까?...정부나 기득권 세력이 마녀사냥을 한 거지(p.124-125)." 히틀러 집권하의 유태인들, 냉전시대의 매카시즘이 공산주의자로 낙인한 무고한 시민들, 우리나라의 간첩단 사건 조작(손해배상 청구로도 보상받지 못할 이들이 숨죽여 지낸 억울한 시간과 가족들의 말 못할 희생, 현세대가 부담해야 하는 과거의 금전적 대가), 인터넷을 통한 무차별 비판과 매도 등. "가장 약하고 만만한 존재들"에 대해 비겁한 일을 하지 말라고 한다. 이 말에서 4대악으로 표명해도 근절되지 못하는 학교 폭력 문제가 아이들 스스로 깨닫고 약자에 대해 비겁한 언행으로 보여주지 말라는 목소리를 찾을 수 있다. 그 분노가 합당한지 차분히 생각해 보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