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대통령이 여름휴가에 읽는 책이 무엇인가가 7월 쯤이면 신문에 등장한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것을 보고 웃었던 적이 있다. 법정 스님의 책이라면 거의 다 제목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맑고 향기롭게>는? 그런가 하면 <넛지> 이야기가 나왔을 때 사기업의 중간관리자 급이 읽어야 할 책을 국정운영책임자가 읽는다는 사실에 놀라면서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닌가보다' 생각하고 지나갔다. 그런데, 올해는 이것마저도 없다. 출판산업이 사양화되는 시점에 제목만 나와도 경기를 살릴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인데.

 

    이 책을 처음 볼 때 왕들이 읽은 책들인가 싶었다. 목차를 보면 왜 서재와 왕, 제왕학을 연결시켰는지 알게 된다. 정확히 말해, 왕이란, 정치지도자란 어떤 자질을 갖추고 있어야 국가를 관리하면서(통치가 아닌) 백성이 안정되는데 기여할 수 있을지 책, 경연제도, 세종과 정조를 통해 본다. 역사를 통해 정치와 인물, 서재학을 오간다.

 

    제왕학의 아홉가지 원칙(p.18-20)을 보며 왜 21세기 국민들은 거리에 나갈 수밖에 없는지 슬퍼지며, 왜 세종과 정조가 후대에까지 회자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저 하늘의 뜻이 아니라 사람이 서로 노력하고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단순한데 왜 안 될까?

 

    경연부분의 이야기가 가장 방대하면서도 읽는 사람이 알아듣기 쉽게 기술되었다. 설명인데 그 속에서 논지를 찾을 수도 있다. 한편으로 지금과 그 시대를 비교하게 되기도 한다. "사림들에 의하면, 경연에서 국왕과 신하는 의(義)라는 측면에서는 군신관계이지만 학문의 측면에서는 어디까지나 붕우(朋友)라는 분위기였다(p.93)." 예의가 넥타이에 양복을 입는 것인지 상대방의 이야기에 마음을 여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지금과 다른 정조의 이야기가 <실록>에 있다.

 

    왕과 신하와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송시열을 보며 얼마 전 읽은 윤휴의 일생이 생각났다. 산림의 거두였던 그가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도 실록의 평은 "지나치게 굳세고 사나우며 자비스러운 마음은 별로 없었다"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을까?

 

    조선시대 왕들의 경연참여방식과 읽은 책 내용을 보다가 정조에 이르러 어진에서 눈을 멈추게 된다. 영조 어진과는 다른 인상으로 이미 다른 책에서 본 그가 쓴 어찰들 속에 나타난 성품과 모습이 한동안 그림을 보게 한다. 자만심으로 보일 수 있는 말들도 자부심으로 만들어 버리는 내공이 어디있는지 살피면서.

 

    동 틀 무렵의 조강과 저녁에 이루어지는 석강까지 참여하면서 지식의 마당에 혼재되지 않으려면 엄청 공부할 수밖에 없었겠다 싶다. 효종 이후 북벌을 시작하면서도 경연을 놓지 않았던 것은 그것이 조선을 지탱하는 중요한 기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순조 이후 경연제도의 무실화와 외척의 득세가 겹치는 것도 그러하고.

 

    당쟁에 따라 바뀐 경연 교재(p.200) 이야기는 요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이념논쟁과 겹쳐 웃음이 나오고, 조선 시대 서적수집의 방식(p.202)은 모든 것이 귀했고 생각을 함부로 밖으로 퍼뜨리는 것을 금기시했던 시대를 볼 수 있어 흥미롭다.

 

    세종과 황희 정승, 정조와 정약용으로 이어지는 성군과 능신(能臣), 명군(名君)과 명신의 관계는 진지하게 읽게 된다. 사람이 상대방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것을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기운으로 퍼뜨릴 수 있는 힘. 대한민국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도 흔치 않은 것을 보면 어렵긴 어려운 일이지 싶다.

 

    뒷부분의 왕들이 읽고 배웠던 책들에 대해서는 한 번쯤 눈에 새길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