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살면서 가끔, 이따금 생각나서 그의 이름이 친구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실제로 봤거나 목소리를 들었거나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쓴 한 문장의 말, 사용한 단어가 주는 삶의 존재와 무게감 덕분에. 동주 이야기다. 윤동주. 이 책 제목을 봤을 때부터, 이건 일제시대의 동주이야기일 거라 생각했다.

 

    어쩌면, 현대인들이 잊고 살아가는 그 시대, 일제가 우리나라를 자신의 나라라고 했던 그 때, 그래서, 조선인들이 아무 이유없이 수용소의 실험대상이 되고, 공장의 근로자가 되고, 여성들의 인권이 없었던 그 때. 그래서, 살아있는 사람들조차 그 때가 엄청난 무게로 다가와 함부로 말할 수 없는 그 시대. 그 시대에 인간성을 얹었다. 하나하나 정성스럽게. 마치 빙수 위에 과일들을 아름답게 배열해서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보이도록 사뿐히 얹듯. 그래서, 동주를 보며 20대의 젊은 동주를 이해하고, 후쿠오카 형무소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고, 한국인과 일본인의 경계를 넘어 인간으로 사람을 보게 된다. "문장은 바로 말하는 자 자신이다(p.278)." 동주의 글이 스키야마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이해하는 방법을 어떻게 변화시는지의 과정이 멋스럽다.

 

    일단, 처음에는 약간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과거 진실은 항상 그렇듯, 미국의 문서발견 혹은 증거발견으로 시작되어 단서로 붙은 대한민국의 이야기에서 엄청난 진실이 섬뜩함과 무력감으로 찾아오기 때문에. 미국의 비밀문건이 풀리거나 증거조사가 있어야만 우리의 과거와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그리고 어느 순간, 이야기의 흐름이 잡히면서 장을 넘기는 손이 빨라진다. 언젠가 봤던 윤동주의 다큐들이 글자가 되어 머릿속에 들어온다. 한국사람도 소장하기 힘든 책들을 소장한 일본인들의 모습도 기억에 남고.

 

    이전의 작가의 책이 서스펜스적이라고 한다면, 이 책은 한 시인에 대한 조용한 찬가이며, 현세대인들에게 말과 글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며 사는 것의 의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패전국의 한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전쟁이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는 것. 그래서, 이 책은 소설이면서도 시를 담은 에세이같다. <참회록>과 <자화상>의 대비를 통한 동주의 이야기를 통한 메시지 전달처럼.

 

     "세상이 얼마나 잔인하고 인간이 얼마나 망가지기 쉬운지. 그럼에도 인간의 영혼이 얼마나 아름답게 빛날 수 있는지(p.11)."

 

     "그가 죽고 난 후에야 그의 존재가 명백히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깨달았다(p.26)."

 

     "시간은 언제나 너무 늦게 오거나, 아니면 너무 빨리 온다. 우리는 언제나 너무 빨리 만난 사랑 때문에, 너무 오래 만나지 못한 사람 때문에, 그리고 너무 늦게 알아버린 진실 때문에 아파한다(p.51)." 

 

      악마와 희망이 공존하는 곳, 이야기를 통한 영혼의 구원을 희구하는 흐름. 연날리기와 편지대필을 통해 사람들 사이에 자리잡은 희망의 이야기. 말보다 글이 주는 생명력과 고귀함. 글이 존재를 밝혀주는 방식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서 바람을 스치는 별이 되고 시내를 흐르는 바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