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를 읽다가 '작가가 변했다. 좋~~~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 속에 나타난 작가의 현실인식은 첨예하지만 글이 주는 느낌은 훨씬 따뜻해졌다. 그래서, 글이 주는 무게는 소설과 에세이의 중간 어디쯤인데 단편소설 다섯 편이 주는 힘은 여전하고, 단어 선택에서 '엄마'만이 선택할 수 있는 표현들과 정서가 보인다. 10여 년 전 부터 쓴 글들이 지금의 글로 이어지기에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작가의 언어와 글이 얼마나 빛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책이다.

 

    어디에선가 읽은 단편도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좋다. <월춘 장0>구는 제목을 보고 한참을 의아했으나, 이내 이해하게 된다. "나의 정원에는 그 어떤 파릇한 것도 돋아나지 않고 그저 황량한 겨울만 가득 차 있었다(p.38)"로 대변되는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혹시 오는 봄을 내가 견뎌낼 수 잇을까. 언젠가 기습하고야 마는 봄 앞에서 내가 그것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혹시라도 행, 복 같은게 온다면 내가 그걸 감당할 수 잇을까? 아아, 거기에는 도구가 필요할 것이었다. 겨울 길을 갈 때 장비가 필요하듯이, 봄 길, 꽃 길, 낯선 행복 길을 걸어갈 장비가, 월동 장구 말고, 월춘 장구......아마도 내게 그건 쓰기, 읽기, 웃기, 기도하기 아닐까(p.41-42)."로 답을 하면서 계획할 수 없는 인생과 답을 내릴 수 없는 삶에 대해 꽃잎 날리는 표현으로 채운다.

 

    이 책의 제목의 소설은 한참이나 기괴스럽게 보인다. 히가시노 게이고 류인지, 요시다 슈이치 류인지 갈팡질팡 하다가 마지막에 등장한 문장에서 역시 공지영 소설이란 생각으로 끝난다. "나와 내 여동생이 살아날 방도를 아는 분들의 전갈을 바란다. 내 이메일 주소는, wildcat@hellchosun.com이다(p.81)" 해석하기 나름이겠으나, 사회문제를 그냥 지나치지 않는 작가에게 60대, 80년대, 2010년대에 20대를 보낸 그 세대를 상징적인 인물로 놓고 집안을 한국사회의 어느 한 집이거나 한국사회로 응집해놓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갓 새끼를 낳은 고양이나 자식이나 손녀 세대에 대한 애틋함이나 배려라고는 보이지 않는 악착같은 생활력과 정원의 악취로 풍기는 공간의 냄새가 이 소설이야말로 풍자소설의 백미처럼 보인다. 전체를 비하하거나 왜곡하지 않고 누군가의 삶을 해석하는 방식이 한참동안이나 책을 응시하게 한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는 독재시절의 K선생과 엄마의 존재를 두고 회고와 수많은 질문과 상념을 거쳐 반쪽자리 성실함에서 타협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아무렇지 않은 듯 시작하다가 갑자기 시대가 변해서 누군가의 모습이 전환될 때 일어나는 읽는 이의 생경함이 이 소설에서 멈칫하는 순간들이 되고 글자의 생각은 작가의 목소리로 전환되어 독자에게 전달된다.

 

    <부활 무렵>은 사는 게 거창하지 않고 한 마디의 말, 하나의 전진이 주는 무게감을 오롯이 전한다. 병아리가 죽을까봐 걱정하는 자식 앞에서 할 수 있는 하나의 말, "괜찮아, 죽는 거보담 조그맣고 약한 게 나은 거야."하고 안심시키는 말을 하면서도 "한번 살게만 해주면 어떻게든 사는 거거든. 한번 살게만 해준다면......"(p.161)이라고 중얼거려야 하는 엄마의 마음. 그 엄마가 술 먹고 딸에게 이상한 소리를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야 하는 엄마라 하더라도. 소설 중반에 작은 풍자를 엿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며 순례와 정례가 대통령을 아는 한 여인이었다면, 농사짓던 분당의 땅을 팔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맨발로 글목을 돌다>는 소설이 무엇인지 다시 보게 한다. "삶의 어떤 순간, 우리는 바람결이 바뀌는 것을 느낀다(p.206)."라는 문장이 작가에게 혹은 소설 속 화자에게, 독자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글. 그래서, "한 인간이 성장해가는 것은 운명이다(p.206)."라는 말은 문장이자 신념처럼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