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추운 날씨가 아니라서 다행인데 얇은 수녀복을 입으시고 밖에 나오셨을까 생각과 조금의 걱정을 하며 여배우의 즐거운 웃음을 보며 함께 웃느라 쫓긴 잠을 청하려 그림책을 폈다. 움직이는 눈썹과 소의 그림을 보다가 '그랬던가' 싶어서 이 책 한 부분을 읽다보니 미디어의 힘이 얼마나 큰지 새삼 느낀다. 이중섭의 계절도 아니고 기획전시가 있는 것도 아닌데(있던가?) 요즘에 이중섭이 생활한 모습이 자주 인용되는 드라마 덕분에 책 구매 사이트 상위에 랭크된 것은 미술에 관한 책으로도 오랜만이지 싶다.

 

    고은 시인이 쓴 평전. 시인이 다른 시인을 쓴 게 아니라 미술가에 대해 이야기한다. 요즘 책들과 문체의 느낌이 좀 다르다. 동시대의 사람보다 약간은 나이든 사람의 목소리가 느껴진다. 그런데, 아마도 이렇게 이중섭이란 사람을 보는 시각도 드물 거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그가 보낸 평양의 유년시절과 가족관계, 학교시절과 유학시절, 일제강점기라는 시기를 거치면서 그가 선택한 일들의 관계들이 작품 속에 그의 눈과 손이 어떻게 녹아들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그림을 보고 그림의 멋을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소와 아이들을 그리며 생존과 생활의 경계를 넘나들며 추구한 예술의 가치가 무엇인지 새삼 놀라며 본다.

 

    아이들의 그림책처럼 눈부신 오산시절처럼 학교 선생님이 어떤가가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저 학교에 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누구를 만나는가가. 그래서 어떤 말을 듣고 어떤 점에서 의욕이 생기면서 이 사회에 또 다시 좋은 어른이 되는가가. 이젠 더 이상 놀랄 것도 없는 문제와 갈등이 터지는게 이상하지 않은 시대와 사회. 이중섭의 사후의 모습이 조금은 얼룩진 게 안타깝지만, 그가 살아있으면서 보여준 가족사랑과 미친다는 것의 의미가 강하게 남는다. 풍족하지 않은 장년기였으나 오히려 생활의 달인이자 겸손과 절약의 미덕이 무엇인지 풍요로운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사람이 좋아하는 일에 미치면 어느 정도까지 자신을 던지면서 할 수 있는지 직업적 소명까지 손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