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계 이황. 유학자라는 설명 이외에 이렇게까지 많은 매화시들을 남겼는지 몰랐다. 그저 한시의 어려움이 주는 막막함이 있는데, 이 책은 원문 해석, 한시(원문), 원문 해석의 빈 틈을 채우며 현대적 의미로 해석된 시, 풀이. 이렇게 4단계로 한 편의 시마다 전개되어 한문이 주는 중의적 의미가 주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시 자체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좋다. 한시에 자주 나오는 고사와 인물명이 주는 생경감은 풀이로 이해할 수 있고.

 

    한시가 어려운 까닭은 우리말로 표현했을 때, “망호당의 매화를 찾다(p.14-15)”에서 알 수 있듯, 어구 사이에 있는 여백에 무엇을 넣어야 할지 가늠하기 어렵고, 밀어 연다(推)와 두드린다(敲)가 주는 의미적 차이가 생기는 존재감까지 생각하기에는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 이런 시가 앞으로 90여개가 있다고 생각하면, 이 책은 마음의 부담감 때문에 못 읽는다. 그렇다면, 이황이 매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을 알 수 없고. 이런 점을 감안해서인지 이 책은 쉽다. 그래서, 한겨울에 핀 매화와 늦봄에 피는 매화의 계절적 감각까지 느낄 수 있다. 꽃이 생명력을 지니며 하루하루 다르다는 것을 그대로 전해주듯.

 

    107편 중에서 94편을 골라 이 책을 엮었다고 하는데, 이 시들을 보고 나면, 매화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다. 상황에 따라, 시를 주고 받는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매화의 그 느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다르게 온다. 그 완전하지 않음은 해석의 문제가 아니라 세대 혹은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느낌때문이지만.^^ 그나마 해석 덕분에 ‘옛날에는 그랬구나!’라는 감상을 할 수 있고. 어느 한 부분에서 이 책 잘못 인쇄되었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제목자체가 길어서 제목에 대한 해석도 길어진 것. 제목이 주는 압박감 역시 무시할 수는 없다. 맥락없이 받아들여서는 글자읽기에 그치기 쉬우므로.^^

 

    매화에 대한 느낌이 다르다 해도 일관적으로 흐르는 이미지가 있다. “따뜻한 봄철에 화사함을 서로 다투는 복사꽃과 자두꽃. 이들은 부귀공명을 다투어 추구하는 세속적인 사람들과도 같다. 이에 반해 매화는 다른 화초들과 아름다움을 다투지 않고 한겨울의 추위에 굴함이 없이 자신의 존재를 꽃피운다(p,56)."

 

    한시가 주는 맛과 멋이 있다. 어떤 실용서보다 더 현실인식이 강하고, 어떤 현대에세이보다 사람냄새가 많이 나는 시들. 갑자기 패스트푸드가 먹고 싶은 날이 있듯, 아무것도 양념하지 않은 나물에 밥 비벼먹고 싶은 날. 그 날에 이 책을 펼쳐들고 홍매와 푸른 매화 숲 사이를 거닐어 보는 것 또한 좋지 아니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