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런 주석이나 해석없이 시인들의 작품이 들어있다. 그래서, 아차! 하는 순간 ‘왜 이 시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생각하며 앞시를 읽어야 하기도 한다. 시에 집중하게 하는 가장 최상의 방법이다 싶다.

 

    시인 김혜순의 <서울특별시>는 다큐 3일을 보는 듯한 삶의 고단함과 진정성이 가득했고, 시인 권혁웅의 <당신은 일곱 시에 마실을 가고>는 이상의 단편이 떠오르며 밥 먹는 일상 행위 뒤에 결국 날개가 돋아나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도 든다.

 

    시인 이병률의 <찬 불꽃>은 읽으면서 시린 마음이 갈 곳을 못찾은 채 시인 장석남과 시인 허연의 시로 이어지다 시인 윤성택의 <기차여행>에서 한 구절에 마음이 환해졌다. “사랑은 역에서 혼자 들을 것 같은 / 철로의 아득한 떨림이다”. 철로의 떨림을 느껴본 적이 없기에, 지하철 역선에 들어올 때 도어 스크린 저 너머에 울리는 철로의 진동을 가늠해보기도 했다. 안내판을 응시하던 눈을 거두고. 시가 주는 맛이 이런 게 아닐까? 이성을 갖고 보는 세상에서 한 뼘 쯤은 나의 이성의 방향을 저 너머에 두게 하는 것. 비록 내일이면 그 감정이 반으로 줄어들고 다음 주면 그 감정이 남아있지 않다 해도.

 

    그 많은 시들 중에서 시인 김용택의 <바람>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시어가 주는 무한한 공간감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그대로 전달되어 그런 것인지.

 

    바람

                                               김용택

 

바람도 없는데

창문 앞

낙엽이 흔들리네요.

 

나를 안아주세요.

 

    지금은 장마가 시작된 시기라서 가을의 공허한 느낌이 그대로 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이 짧은 4행이 주는 무한한 느낌이 주는 것이 바로 누군가를 향한 - 그것이 신이라는 신성한 이름이라 해도 - 공존과 이해, 사랑으로 다가온다.

 

    시인 57명을 다 알 수 없으니, 책 뒤에 있는 시인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읽었다. 그런데, 한 부분에서 ‘이런 삶’이라는 추상적 단어가 떠올랐다. 시인 고은에 대한 소개. “시인 생활 50여 년. 시집 여럿.” 이런 것에 감동받은 까닭도 앞에 있는 많은 시인들의 시 덕분이라고 하면 과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