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나무>를 책으로 읽었다면, 세종시대의 미스테리를 건물과 함께 기억하게 된다. 이 책은 윤동주의 시를 그의 언어와 삶의 일체성, 그 시대의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그 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삶에 대해 평면도가 아닌 조감도를 그리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 한 대목이 잊히질 않는다. "형무소에선 모든 계절이 끔찍한 고문이었다(p.18)." 그곳에서 나가고 싶었을 것이다. 한 마디만 하면, 글자 한 줄이면 그곳에 있지 않아도 되는데, 왜 그래야만 했을까? 그것은 어쩌면, 용정 사람들만이 지녔던 가치이며, 윤씨 집안이 뿌리내리며 개척했던 무형의 가치였을 것이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고인이 된지 수십년이 지나도 그의 이름이 기억될 만한 존재감이 있는 것으로 있게 한. 과연 요즘에는 이런 집안을 찾아볼 수 있을까? 무형의 가치가 존재하는, 그래서, 수십년이 지나서 이름을 기억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을 수 있는.

 

    1권이 그래도 좀 밝은 이미지였다면, 2권은 밝게 시작해서 무겁게 바닥으로 내려가다가 마지막에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답답함이 더운날 마시는 찬 물 한 컵의 느낌만큼 시원하다. 프랜시스 짐과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어들도 존재가 되어 종이위에서 튀어오른다. 동주를 아프게만 기억하지 않고 추리물의 연결고리가 되어 박진감 넘치게 하는 부분이 여기다. 특히, 동주에 대한 묘사, 그것은 "동주"라는 고유명사가 지닌 진리치에 가깝다. "바람 속에서 태어난 아이, 태어나면서부터 조국을 잃어버린 아이,...(중략)..., 미소가 문신처럼 입가에 새겨진 미남자, 그리고 결국 그 미소조차 잃어버린 사내...(p.236-237)."

 

    적이 적이 아니고, 동지가 동지가 아니었던 시대, 그래서, 스기야마와 유이치가 일본인임에도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던 상황을 제3자의 입장으로 이해하고, 스기야마와 유이치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아닌 존재들에 의해 삶의 가치관이 이미 결정되었던 시대. 우리말을 사랑하지만 머릿속에서조차 지워야 했던 시대, 말이 없어서 숨쉬고 있지만 생명은 없던 시대, 만행으로 기억되는 하나하나의 일들속에서도 그들이 지켜내고자 했던 가치. 그것은 그들이 부르던 합창만큼이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강하다. 우리말이 해체되고 파괴되면서 세대간에 소통되지 않는 단어들, 옳음의 기준이 제각각이라 이제는 진짜 옳은 것이 무엇인지 혼돈되는 시대. 그래서, 미안하다. 그 시대를 기억하지 못함에, 그들을 기억하지 못했음에...

 

    그리고, 파란 하늘에 가끔씩 눈으로 써 본다. 하늘, 바람, 별,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