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의 어떤 내용보다도 시 집 제목이 그냥 넋놓게 만드는 때가 있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이러고 있으면, 무슨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피곤함이 반짝거림으로 바뀐다. 새벽이 다가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어도 괜찮다. 밤을 지새웠다는 것보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끌어당겨졌다는 느낌이 참 좋아서. 잘못 이해하고 있다면, 시인이 '시도 제대로 이해 못하면서...'이러실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불귀' 연작이 있는데, 정작 그 느낌은 스산하지 않다. 오히려 생활상의 모습을 담은 것처럼 느껴진다. '당신의 아홉 번의 윤회'를 읽으며, '시인은 도대체 얼마만큼 똑똑해야 하는 걸까?'라는 뜬금없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으로 시를 쓰는게 아니라 많이 알고, 아는 걸 내면화하고, 내면화한 것을 한 글자로 표현해 내는 것인가?

      시인에게 정말 미안한 이야기인데, 시를 보면서 뜬구름잡던 마음이 뒤에 있는 '산문-그림자론'을 읽으며 좀 가라앉았다. 새털구름을 보다가 뭉게구름을 본 듯. "시 역시 그림자와 같지 않을까. 빛의 방향과 사물의 모서리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세계에 현현해 있는 모든 현란한 것들의 표정을 지우고, 그 자세만을 담으려 한다는 점에서(p.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