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이어령 교수님의 글을 보았을 때, '촌철살인' 혹은 '칼같은 시선'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누군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어도 '축소지향의 일본인'을 통해본 시각은 철두철미한 학자라는 인상을 강하게 남겼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러한 시선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보이는 지성 혹은 이성보다 그 밑을 받치고 있는 감성의 깊이가 몇 배나 되기 때문이 아닐까?' 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이라는 느낌으로 하는 게 아니라 몇 십년 동안 자신을 이루고 있는 토대로 하는 '말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 엄마. 어떤 이름이라도 좋다. 그런데, 누가 과연 이렇게까지 은유라는 수사학적 방법으로 어머니라는 존재를 표현할 수 있을지...책, 나들이, 뒤주, 금계랍, 귤, 바다. 이렇게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는 사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익숙하지 않은 뒤주, 금계랍과 같은 용어의 신선함으로 머리에 바람이 분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신의 이야기는 신부님께 고해성사하는 듯 신성함이 가득하다. 나이보다 연세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이에 아버지가 딸을 보며, 부모라는 존재에 대해 세상과 자신에 대한 고백적 목소리. 내가 보지 못한 세상을 산 인생 선배가 '살아보니 이렇더라.'로 조용히 이야기 해 주신다. 그런데, 과장되거나 호들갑스럽지 않다. 그래서, 어머니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진다. 보면서 잠깐씩 눈물이 핑~! 돌다가 얼른 수습하고 또 핑~! 돌다가 수습하는 상황이 무안하지 않다.

       에세이지만, 내가 이 책을 완전히 이해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처럼 머리로 이해하고 수긍하면 되는 책들과는 달리 에세이는 마음으로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가위바위보를 하면 언제나 나는 나의 고향에 진다(p.31)."과 같은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막연히 구름이 지나가기는 한데, 그 구름이 뭉게구름이었는지 솜털구름이었는지 모르는 것 같은 느낌. 이런 표현이 정말 많다. 그래서, 아직은 살면서 이해할 것들이 많은가 보다. 이상하게도 이 표현이 좋았다. "그렇다. 온천물은 단순히 뜨겁다는 물리적인 특성만을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뜨거움이 깊이를 지닐 때만이 비로소 그것은 온천물이 된다(p.33)."

       지금 이 순간의 마음이 어떻더라도 어머니를 떠올릴 수 있는 소재 6가지를 찾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