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바키!?

무식이 통통튀는 말일지 몰라도 책을 통해 처음으로 들어보는 이름이다. [부르바키는 어떻게 20세기를 지배하는가, 20세기 예술에 영감을 불어 넣은 천재 수학자 부르바키 이야기]라고 친절하게 책의 표지에 적힌 문장을 통해 막연히 위대한 어떤 수학자에 관한 이야기일줄 알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읽다보니 그게 아니더라구.

여러 대학에서 똑같은 수학 교과과정을 가르치는 동료들이 모여 문제를 매듭짓는 결정을 내리면 지긋지긋한 질문에서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앙드레 베유의 생각이 부르바키의 탄생의 시초가 되었다. 1차 대전 후 프랑스 지식인층과 상아탑은 완전히 무너졌다. 전쟁에서 사망한 대학생의 수는 엄청났고 이에 이은 학문의 침체기를 딛고 일어나기 위해 새로운 수학적 개념과 교육 개념이 절실히 필요했다. 그들은 프랑스 대학에서 가르치는 미적분과 해석학 강의에 필요한 교과과정을 정리하자는 야심만만한 계획을 착수했다. 이 수학자 집단이 부르바키라는 가공의 인물이 되었다. 실제로 이들이 단지 수학강의 계획서만 만들었다면 이렇게 대단하게 기록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써야한다는 생각으로 온갖분야의 종사자들 뿐만 아니라 평균적인 지능을 가진 보통 사람들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목표를 가졌다.

지속적인 초안 탈고과정을 통해 만들어 낸 원고는 한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기 불가능했기에 최종산물은 특정인의 작품이 아니라 전체집단의 작품이 될 수 있었다.

 

부르바키와 그 업적은 20세기 초반에 일어난 문학적 격변이 낳은 직접적인 산물로 20세기는 낡은 방식들을 버리는 것으로 시작한다. 양차 대전은 우리가 알던 순수한 세계를 종식시키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통한 물리적 시간과 공간 그 성질들을 바라보는 방식의 변화 등으로 과학을 획기적으로 변화 예술과 인문학 철학 경제학 이 그 뒤를 따라 과거와 단절하는 길을 걷게 했다.  부르바키는 구조라는 개념을 제한된 언어학적 의미에서 끄집어 내어 정확하고 수학적으로 강력하게 만들어 개념의 세계로 보냈다. 피아제는 수십 년에 걸친 심리학 연구를 바탕으로 아동의 지능발달단계마다 사고 과정이 수학적 개념들에 기초해 구조적 방식으로 일어난다는 결론을 내렸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라캉은 뇌 속의 잠재구조를 포함한 숨겨진 단계가 있다는데 구조주의 개념을 연결했다. 그 밖의 경제학에서의 경제 균형개념 등에 이용되기도 했다.

부르바키의 몰락은 그 목표를 이뤘음에 수학은 스스로 제갈길을 걸어갈 수 있었고 더 이상 부르바키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음에 더불어 국수주의와 민족주의의 퇴조와 맞물려 일어났다. 

 

20세기 초반의 사회적분위기와 더불어 수학과 관련된 각종 학문의 발전사에 대해 두루 알 수 있는 책이다. 물론 내가 수학에 조금이나마 일가견이 있다면 더 재미있었을 테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