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행방불명되고 그녀를 납치했다는 협박전화를 받고 명문가인 호겐가의 여주인 야요이는 비공식적으로 긴다이치에게 사건해결을 부탁한다. 그러한 연유로 여관에 묵고 있던 긴다이치에게 사진관을 운영하는 혼조가 찾아와 묘령의 여인에게서 부탁받은 기이한 이야기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하게 된다. 한 여자가 목을 매어 자살하고 폐가가 되어버린 병원고개의 집에서 결혼기념사진을 찍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사진을 찍어줬지만 뭔가 미심쩍은 느낌에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지나갈 수 없었던 혼조가 그 결혼식에 대한 사연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 혼조가 말하는 병원고개의 집은 바로 손녀를 찾고 있는 야요이의 가문이라는 기묘한 우연에 놀라게 되는데...

 

이 짧지만은 않은 소설을 읽으며 이제야 비로소 요코미조 세이시라는 작가의 작품이 왜 지금도 널리 읽히는지, 긴다이치 코스케가 명탐정인지 어렴풋이 느끼게 되었다.
아마 나는 이전의 작품들을 그냥 흘려읽었나보다. 사실 처음 병원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잡을 읽을 때에도 쉽게 와닿지 않는 이름들과 친족들의 관계도가 제대로 개념화되지 않아 이야기의 전개과정에서 사건 자체의 정리가 되지 않아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지엽적인 문제들에 연연하지 않고 전체의 흐름속에서 글을 읽어나가기 시작하니 그때야 비로소 하나의 이야기가 형체를 잡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사건과 사건의 해결, 트릭의 비밀을 밝혀내는 재미보다 이 끔찍한 사건의 배경속에 개화기 당시의 일본사회의 분위기, 인간의 욕망이 만들어내는 죄악과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연민과 가문으로 이어져 얽혀있는 원한과 저주, 오해가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이 과거의 이야기에서 현재의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는 사건의 구성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그 안에 담고 있는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은 더욱 마음을 잡아 끌고 있다.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은 20여년전의 사건이 망령처럼 다시 되살아나며 과거의 비극이 현재에 되풀이되고 있는 듯 하지만 모든 것을  꿰뚫고 있었던 긴다이치 코스케의 활약으로 비극의 고리가 밝혀지며 더 끔찍한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과거의 사건해결에 대한 후회가 모두에게 남게 되는 쓸쓸한 사건의 해결이 된다.
하지만 다시 곱씹어 볼수록 단순히 복잡하게 얽혀있는 근친상간의 비윤리적인 내용이나 목을 절단해 전시하는 엽기적인 사건을 해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되어가는 일본사회의 모습과 체면을 중시하며 진실을 은폐하려고만 하는 가문이 스스로 비극적인 사건을 불러왔다는 것을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