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들쭉날쭉한 단편 중에서는 나폴리에서 탄 장난꾸러기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선상의 악녀'가 단연 최고. 전편의 어둡고 스산한 분위기를 털어버리기라도 하려는 듯 작심하고 배에 타자마자 소년이 벌이는 온갖 종류의 장난이나 소년과 아버지를 계속 따라다니는 엄청나게 화려한 차림의 '파리부인'에 대한 온갖 묘사에 열을 올린다. 하긴 이런 우스꽝스러운 묘사야말로 와카타케 나나미의 장기니까. 재미로 따지자면 말괄량이 아가씨의 모험(실패)담을 그린 '아가씨 승선하다'도 만만찮지만, 역시 '선상의 악녀' 이야기가 보여주는 탄탄한 추리에 한 표. :)

 

   . 단편 중간중간에는 한두장 정도 '류자부로의 여행기 초고' 시리즈가 실려있는데, 이것 역시 만만찮다. 보통 여행하면 보고 먹고 마시는 게 일상인데 여기에서 보는 건 쏙 빼고 오로지 먹고, 특히 '마시는' 이야기만 잔뜩 실려 있는 유쾌한 글이라 보고 있자면 왠지 술과 여행이 땡긴다. 풍광이 좋아 위스키를 뜯고 정략결혼을 하러 런던으로 가는 아가씨를 안타까워하며 진탕 마시고 탈출에 실패한 아가씨와 함께 마시고 말리러 온 가정교사와 함께 또 마시고 주정뱅이를 말리다 목이 말라서 마시고.. 짤막한 3쪽짜리 여행기 하나에 마신 게 이만큼이니 술이 안당기는 게 더 이상하려나. 여행기 중간에 등장하는 전보를 'NUGA EUMJU GIHAENGEUL SSURAGO HATNEUNYA YEOHAENGGI NAENWARA HYEONG' 이라며 한글발음으로 바꾼 것도 일품.

 

   . 이 여행기가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의 복선이 되기는 하는데, 그냥 기분좋은 후일담 정도니 '반전일 거 같은데 꼭 맞춰봐야지!' 이럴 필요까지는 없다. 여기까지 읽어준 것에 대한 작가의 작은 팬서비스로 기분좋게 읽고, 아 이런 게 있었구나 하면서 넘기면 충분. ^^ 세 번째 단편인 '고양이는 항해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이 이후의 여행기에서 꾸준히 언급되다가 결국 두리뭉실하게 끝나버리는 등 좀 완성도가 떨어진다 싶은 부분도 있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잇는 산뜻한 일상 미스터리물로 부족하지는 않았다. 어쨌든 와카타케 나나미의 작품은 소개된 시기나 은근한 인기에 비해서는 너무 적은 작품만이 번역되었으니, 나와주면 줄수록 환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