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이 주류 경제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이 시대에 아웃사이더인 장하준 교수의 현 경제체제와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허구, 부작용 비판 및 정부의 규제 강화와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사민주의 :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개인의 자유와 권리 즉 경쟁과 업적은 보장하되, 기회의 균등도 함께 살리겠다는 이념)에 입각한 대안 주장은 이론적 토대의 치밀함과는 별개로 현 경제체제 하에서  그 어떤 삶의 질 향상도 누리지 못했던 99%의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성공했다.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베스트셀러 등극과 스테디 셀러로서의 확고한 위치는 국내 주류 경제학자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안겨 주었고 이에 대한 반대 논리와 대안 제시의 압박을 받기에 충분했다.

 결국 주류 경제학의 신봉자들(여기에는 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혜택을 누리는 정치, 관료 집단도 포함될 것이다)이 저격수를 내세워 책을 펴냈다.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반가웠다. 개인적으로 정부의 규제가 견제역할로서 일정 기능을 맡아 줄 수 있다면 필요하다고 보는 장하준 교수에 더 가까운 입장인지라 그들의 반박 논리와 대안이 어떻게 장하준 교수의 주장의 허점을 지적하고 독자들을 수긍시킬 수 있을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난 소감은 대부분 실망 그 자체였다. 기대가 커서 였을까? 장하준 교수의 주장을 각 챕터의 전면에 내세우고 이에 대한 반론을 장황하게 풀어 냈지만 그 반론 자체는 한마디로 경제학 원론에 대한 알기 쉬운 설명에 그쳤고 경제학을 전공한 이들에겐 개론적인 측면에서 리마인드 시켜주는 수준에 불과했다.

일례를 들어 보자...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따라서 주주는 어떤 경우에도 기업의 성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이 많은 수익을 내는 경우 그만큼의 이익을 얻지만 손실을 보면 그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것도 역시 주주의 몫이다. 반면에 경영인, 근로자 등 기업에 고용된 사람들은 기업과 계약 관계에 있다. 이들은 기업의 성과와 무관하게 계약 기간 동안 정해진 임금을 받는다. 따라서 일정 기간 기업과 계약 관계에 있는 이들과 기업의 성과에 대한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주주를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은 기업의 소유주로서 주주의 중요성을 의도적으로 간과하는 것이다.”(본문 39-40페이지 중)

경제원론에서나 볼 수 있는 가장 교과서적인 정의와 표현으로 가득한 주장이다. 실상 주주가 위 표현대로 행동할까? 주주가 대부분 기업을 경영하고 있는 경영진과 중복되고 소유 지분이 높다면 위 주장에 일리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만 놓고 보더라도 IMF구제금융을 거치면서 대부분 대주주를 위협할 정도로 외국인 지분율이 높아진 상태이다. 이들은 기업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가차 없이 인원삭감이나 보유 부동산 매각 등 비영업권의 조정을 통해서라도 영업손실을 상쇄시키고 수익을 내도록 강요하며 이로 인해 상승하는 주가에 대한 차익을 거두거나 배당이익을 가지고 국외로 빼내간다. 속칭 자본의 유출인 것이다. 이런 경우가 아니더라도 주주가 손실을 감당할까? 천만의 말씀...보유지분을 장내 매각함으로서 더 이상의 손실을 줄이고 새로운 기업을 사냥하기 위해 전술을 바꾸면 그만이다. 실소를 금치 못하는 부분이 이 책 전반의 기조를 이루는 것이다. 그저 안타까울 뿐..

 논쟁이 생산적인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있으려면 상대 주장의 논리적 허점에 치중한 공격보다는 상호간 논리의 장점을 융화시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현실에선 어려운, 아무리 이상적인 모습이더라도 최소한 그런 방향으로 논쟁을 이끌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은 장하준 교수의 논리적 허점을 부각시키려 했지만 오히려 주류 경제학자들이 현실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상아탑에 갇혀 있으며 유연하게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음을 노출시켰고 신자유주의 경제이론의 프레임을 편협하게 고집하는 전문가들의 반성이 필요함을 깨닫게 해 주었다.

 당초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장하준 교수에 대한 반박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예상했었다. 현 시대에 나타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모순을 비판하는 그의 주장과 대안은 직접적으로 삶의 질 변화와 연계되어 일반인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지만 그의 주장에 대한 반박은 결과적으로 현 경제체제와 경제이론을 지지하는 경우로서 ‘현 경제위기는 일시적인 오류로 발생하는 문제이므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없다‘는 스탠스를 취하는데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마음에 품고 읽어도 이 책의 주장은 현 경제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주었고 그런 측면에서 안타까움과 답답함만 늘게 해 주었다.

단, 다소 맥빠진 반박에 아쉬웠지만 이 책의 출간 의도마저 폄하되서는 안된다고 본다. 장하준 교수의 주장이 100% 다 맞는지에 대해서는 지난한 과정을 통해 검증이 이뤄져야 할 부분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대기업 GM의 몰락은 결코 약한 규제 때문이 아니었다. 노조의 비효율적인 요구를 모두 받아들여 경쟁력을 상실한 것이 GM 몰락의 진정한 이유”라는 주류 경제학자들의 주장에 대해서도 귀담아 들어야 할 부분이다.

장교수의 주장에 대한 반박 논쟁 1라운드인 <장하준이 말하지 않은 23가지>는 개인적으로 장하준 교수의 판정승으로 본다. 두 번째 무림고수의 등장을 기대한다. 그들의 치열한 무공을 통해 무예를 겨루고 거기서 벼려진 칼을 통해 다함께 잘 살수 있는 이상 사회를 가로막는 바위를 깨뜨렸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