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할 만한 그런 소설이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쓰레기 같은’ 소설이라고 말한다는 건 바르지 못하다. 그 속에서 얻을 것을 취사선택 하는 것은 독자에게 달려있는 것인데, 그렇게 된다면 독자의 고유한 권리를 스스로 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어린이나 청소년 대상의 책만이 책은 아니니까. 어른들도 살아가다 한 번씩 힘들게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공간이 필요하니까 말이다. 우리의 평범한 삶의 모습을 그려낸 듯하다. 옆에서 지켜보았던 것처럼 아주 생생하게 말이다. 웃음소리 하나라도 민감하게 들리는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중요한 건 시험이 8일 정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쿡 하고 오랜만에 웃도록 만들어준 구절이 있다. “이 놈의 개새끼가 어딜 함부로 들어와! 당장 나가지 못해!” 그냥 일상생활에서 듣는 개새끼라는 말은 욕으로 들리겠지만 여기에서는 진짜 개 한 마리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무의식적으로 진이 소리를 내지른 것이다. 남편의 행방을 찾는 그런 뒤숭숭한 상황에서도 싫어한다는 의사를 밝힌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얼마나 인간 친화적인가.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 글귀보다는 별 거 아닌 말들(너무 많이 들어서)이 있는 글이 진정한 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둘 것은 여기서 일어난 모든 일들이 내 주변에서 일어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만큼 사실적이라는 이야기니 너무 놀라지는 마시길 바란다.

사람을 사귀는 데 있어서 갈등하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깨달은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은 나에게는 모두 괜찮아 보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차지 않을 때가 있다. 드라마를 보아도 매번 괜찮은 남자는 그 사람에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여자와 사귀지 않는가? 케이티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제 3자인 내가 보기에도 딱히 그럴듯한 매력이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결혼한다. 아마 자신이 전 남편에게 이혼 당하고 그 힘겨운 순간에 레이(두 번째 남편)가 찾아왔고, 그 때 그런 그에게 매력을 느꼈을 것이다. 묘사된 모양새를 보아하니, 사랑을 싹튼 순간은 자신을 달래준 그 순간부터일 것이다. 그러한 상황들이 맞지 않았다면 아마 결혼까지 생각할 수 없었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결혼을 취소하겠다는 출처 불분명한 말로 그녀는 동생을 한 대 때리는데(스트라이크!) 솔직히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가 존중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종종 가족에게 불만을 터트린다. 그렇지만 끝은 언제나 happy ending. 나 또한 이런 전형적인 행복을 사랑한다.

가족들 중에 가장 특이한 사람은 아마 조지일 것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친구가 죽은 뒤로 자기에게도 죽음이 닥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종의 강박관념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엉덩이에 생긴 ‘습진’을 스스로 판단하여 ‘암’으로 진단내리기에 이른다. 딸이 집에 와서 엄청난 소식으로 선전포고를 할 때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데 그것을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넘어가고 진료를 받으며 병원에 간다. 의사가 자신에게 똑바른 처방을 내리지 않는다고 하면서 의심하는 것이다. 상처 부위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의사 덕분에 ‘내가 심각한 병에 걸렸구나.’라는 그의 의심을 더욱 깊어져 갔다고 보면 될 것이다. 명색이 의사인데 습진이랑 암도 구별하지 못할까봐?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가 기정사실이 되는 건 그의 행동 탓이다. 결국 스스로 그 종양을 제거하려고 마음을 먹고 가위와 다른 잡다한 것들을 준비한다. 화장실에서 가위로 그 부분을 찔러(!) 잘라내는데, 외과의사도 아니고 깔끔히 없앨 수 있겠냐고? 911 불러서 병원에 갔지, 뭐. 그랬더니만 거기 있는 의사들은 그를 정신병자 취급하면서 임상 심리를 받아 보라고 권하는데. 가족들에게 거짓말까지 해 가면서 가위 이야기를 숨기려 하는 모습을 보면서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라는 의문이 사라지질 않았다. 혹시 아내의 불륜 장면을 목격한 것이 너무 충격이라서 그런 것일까? 작가에게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렇지만 이런 의문들은 묻어가는 게 상책이다.

어쨌든 이혼하고 가정에는 또 먹구름이 몰아닥칠 거라는 모든 독자들의 예상을 깨고, 우리들의 조지 씨는 아내의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을게.”라는 말에 “고맙다”는 의외의 대답을 한다. 아마, 딸의 결혼식 날, 그를 보자마자 죽도록 얼굴만을 겨냥해서 때린 것도 이유 중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무슨 이유든지 간에 괜찮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그리고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 식사를 하는 모습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서로가 맞지 않는 가정이라도 삐걱거리면서 돌아가기는 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가족도 언제 한 번 모였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자마자 싸우기보다는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시간을 고대하면서 소문났던 하루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