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표지를 보자마자 웃음이 난다. 그저 흩날리듯 쓴 글씨같기도 한다. 시원시원하게 써진

글씨가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디딤돌위에 이끼처럼 무덤덤하게 피어난 네잎 클로버가 시원한

여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글로도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구나'하는 감탄을 새삼스럽게 하며

오래전 일이 떠오른다. 우연히 놀러간 친구네 집에 냉장고에 빼곡히 적힌 붓으로 적은 정갈한

글씨에 누구 솜씨냐 물었더니 친구는 자기 친정 아버지 솜씨라고 했다. 그래서 지나가는 말로

혹시 아버지가 다시 붓을 드시면 만학도를 응원하는 글을 부탁했었다.

 

만학도는 아니지만 왠지 열심히 하는 그런 문구가 갖고 싶었었다. 그리고 다시 놀러간 친구네

집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을 받았다. 친구 아버지가 나를 주기 위해 종이를 몇 장 버린 뒤에

드디에 내 손에 들어온 글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바로 침대 위에 붙였고 이를 기념해서

작은 조카를 아래에 세우고 화선지를 손으로 가리키라는 지시를 한 뒤에 설정샷을 찍었고

설정샷 덕분인지 어린 조카도 침대를 오가며 한문을 유심히 바라보곤 했었다.

 

그러다 이사를 가게 되어 벽에 붙은 화선지는 떼어 어딘가에 보관해두었는데 잘 보관해둔다고

두었는데 지금은 아쉽게도 행방이 묘연하다. 그래서 많이 아쉽지만 언젠가 마음을 비우면 홀연히

내 앞에 모습을 나타낼꺼라 믿고 있다. 이 책에 다정다감하게 씌여진 캘리그라피는 잊고 있었던

오래전 감흥을 되살려주었다. 벽에 붙인 글씨를 보고 한동안 기분 좋았던 나와 조카의 모습까지

기분좋게 떠오른다. 간결한 글씨와 아담한 그림만으로도 마음이 이렇게 훈훈해질 줄이야~

이참에 책에 동봉된 저자의 캘리그라피가 씌여진 엽서에 편지를 써볼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