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여하간 한달음에 다 읽었다. 재미도 있었다. 미스터리적 느낌도 있었고. 물론 시간여행이라는 소재가 주축을 이루는 건 예측한 대로였지만 시간여행은 말 그대로 그냥 소재에 불과했다. 중요한 건 갈등하고 고민하고 긍지를 가지며, 타인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알고 스스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히로타와 구로이의 대조적인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구로이라는 캐릭터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자기 자신에 긍지를 갖는 사람은 빛이 난다. 멋지다. 전체적으로 SF라기보다는 주인공 소년 다카시의 성장 소설이라는 느낌이 더 많이 난다는 의견도 있는데, 다카시만 성장한 건 아니지. 어떤 형태로든 '사건'을 겪은 사람은 누구나 성장하기 마련이다. 다카유키도, 다마코도, 후키도 히라타도. 단지 다카시는, 주인공 어드밴티지를 얻었을 뿐. ㅎㅎ
  
  우리 나라나 일본이나, 젊은 층이 근현대사를 어지간히 모르고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 건 마찬가지다. 근현대사는 국사를 배우는 끄트머리에 간신히 존재하며 역사 자체가 꿀꿀하고 우울하여 사실 제대로 배우고자 하는 동기부여도 안 된다-_- 머나먼 옛날 역사는 연도까지 외면서 줄줄 꿰고 있어도, 바로 몇십 년 전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는 '옛날 일인데 뭘…' 하면서 생각하지 않으려 든다. 분명 미래의 사람인데도 과거에 일어난 일들을 모르고 있었던 다카시의 부끄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초장에 하도 독자에게 역사적 예비지식을 우겨넣으려 해서 좀 졸렸지만(그래서 읽다 잤다. 아침에 일어나서 다시 읽었지만 ㅋㅋ) ;;;  

  하여간 <낙원>에서도 그렇고, <외딴 집>에서도 그렇고, <이름 없는 독>에서도 그렇고 <가모우 저택 사건>도… 여사님은 뻑하면 나를 울린다. 아니면 콧등이라도 찡해지게 한다. 결말이 하도 가슴 먹먹해서(뭐 답답하다는 건 아니고, 여운이 많이 남는다는 의미로) 나는 몇 번이고 마지막의 몇 장을 괜스레 뒤적였다. 작년 초 일본여행 갔을 때 인상 깊게 봤던 아사쿠사 카미나리몬의 커다란 모습을 아슴푸레 떠올리며. 그래, 그 사람 북적이는 가운데서 다카시는 그녀를 만났구나….  

  그나저나 이 책이 신세기 에반게리온과 함께 공동 SF대상을 수상했다니, 거 참 묘하게 재미있는 얘기다.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