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판타지'라는 용어 자체에 궁금증이 생긴다. -플롯, 주제, 설정 등 예술의 주요 요소를 마법이나 초자연적인 것들로 구성한 예술을 뜻한다-라. 어쩌면 정말 방금 언급한 요인들이 판타지라는 부분에 있어 없어서는 안될 것들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초자연적이고 리얼리티와 동떨어진 것이 판타지라고 해도, 그 안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어떤 요소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테메레르] 에 열광하는 것은 바로 그 요소, 우리가 흔히들 말하는 인간적인 감정 때문일 것이므로.

 

그런데 여기 또 한 편의 판타지 대작이 있다. 해리포터나 나니아 연대기처럼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작품을 꼭, 감히, 대작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작품 또한 역시 [테메레르] 에 버금가는 훌륭한 작품이다. [테메레르] 에 용이 등장한다면. [야수] 에는 뱀의 모습을 한 투사와 새의 모습을 한 왕수가 등장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비슷한 것은 이 두 작품이 인간과 동물과의 교감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료자 신성왕국, 투사지기 마을에서 자란 소녀 에린은 투사의 수의사로 일하는 엄마와 함께 살고 있다. 투사지기들 중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는 엄마이지만, 그러나 그녀는 안개의 백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멸시당한다. 투사는 무성피리로 사람에게 복종하기는 하지만 절대 길들여지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날 가장 뛰어난 투사인 '엄니'들이 몰살을 당하고, 그 책임을 물어 엄마는 처형당한다. 엄마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쓰던 에린이었지만 결국 실패하고, 엄마는 처형직전 투사들을 손피리로 조종하는 듯한 의문의 모습을 보여준 채 죽음을 맞는다.  엄마의 이상한 능력으로 투사를 타고 날아가던 에린은 상처를 입고 벌치는 노인 조운을 만난다. 그와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던 중 왕수가 투사를 피리소리로 마비시키는 모습을 보게 되고,  더 이상 조운과 함께 있을 수 없는 때가 오자 카자룸 왕수 보호소 학교에 입학한다.  왕수 역시 투사와 마찬가지로 무성피리에 제압당하는 동물이지만 절대 사람에게 복종하지는 않는다. 상처입은 왕수 리란을 돌보던 에린은 야생 왕수를 보았던 기억을 떠올리고, 리란에게는 무성피리를 사용하지 않으며 험난한 우정을 키워간다.

 

사람들 중에는 개나 고양이를 애지중지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더러 있으나, 나는 알 것 같다. 그들이 동물들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존을 위해 다른 생명을 해치는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자신만을 위한 추악한 욕망에 의해서도 한 생명을 없앨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악당이나, 다른 인정없는 인물들처럼 말이다. 인간의 그런 잔인함이 쌓이고 쌓여 사람들은 지쳐가는 것이다. 믿음을 주고받아야 할 인간관계가 어느 한 순간 차갑고 잔혹하게 변해가는 것에. 물론 인간관계가 그렇게 편향적인 것만은 아니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한 우리 마음 속에는 그런 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항상 자리잡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온전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동물에게 애정을 쏟아붓는 것이다. 그것이 어쩌면 내가 [테메레르]나 [야수] 처럼 동물과의 교감을 그린 책에 열광하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책은 재미있는 소설이 갖춰야 할 모든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선과 악의 대립, 가족이 아닌 사람들과도 나눌 수 있는 온정,  의사소통이 가능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동물과의 교감 등, [테메레르] 를 읽으며 느꼈던 전율이 다시 한 번 내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비록 왕수 리란이 테메레르처럼 직접적으로 사람들과 대화할 수는 없지만, 에린과 리란의 관계에는 우정이 자리잡고 있다. 그것을 여실히 증명하는 장면이 바로 결말 부분이다. 결말 부분을 읽으면서 벅찬 감동에 마음이 뜨거워지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짓고 말았다.

 

표지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섬세한 묘사와 이야기의 전개방식은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매우 훌륭하다. 만약 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다면 나는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갈 것이다. 별 다섯 개가 전혀 아깝지 않은, 띠지에 적힌 글귀처럼 과연 동양 최고의 판타지라 칭하고 싶다.

 

언젠가는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이렇게 따뜻하고 완전하길 바라면서 이미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는 아쉬움에 다시 책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한다